역사에 남고 싶어서 ‘그리스 신전’ 불지른 관종의 최후

  						  
 								 

기원전 356년 7월 21일.

고대 그리스 에페소스(현재의 터키)에는 한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친 신전으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앞서 이 신전은 최종적으로 파괴되기까지 무려 3번이나 재건됐다. 하지만 현재는 신전의 토대와 조각 파편만이 남았다.

이렇게 당시 그리스에서 엄청나게 신성한 장소였던 이곳은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사람이 나타나 불을 지른다. (헤로스트라투스로 인해 두 번째 파괴를 당한다)

그는 방화 후 자신의 범행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고, 당연히 신성한 신전을 불태운 혐의로 체포되어 에페소스 관료들 앞에 끌려간다.

에페소스 관료들이 왜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냐고 묻자 그는 “역사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이후 그는 사.형을 당했고, 관료들은 차후의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해당 사건과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고대의 역사가인 테오폼푸스가 자신의 저서에 이 사건을 남기면서 헤로스트라투스는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한 악명을 즐기는 사람을 의미하게 됐다.

영어 단어 Herostratic Fame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고자 하는 명성을 의미하며

독일어로 herostrat은 유명세를 얻기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범죄자를 의미한다.

결국 신성한 신전을 불태워 유명세를 얻으려던 헤로스타라투스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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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제2의 홍콩’이 생길뻔했던 사건

19세기 러시아 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 대영제국.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조선 전라도의 거문도를 점령한다.

상황은 명백한 ‘불법 점령’이었으나 영국의 목적은 조선을 침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러시아 견제를 위해서라 거문도 주민들에게 매우 잘해주었다고 한다.

거문도를 강점한 영국은 막사와 포대, 등대 등을 건설하기 위해 거문도 주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는데,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했으며 의료지원까지 해줘 거문도 주민과 영국군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 영국군하고 거문도 주민들하고 생긴 일화도 재밌는데

한번은 영국군이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날에 축포를 쏘기로 하며 주민들에게 함포 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 개들이 함포 소리에 놀라 산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이때 영국군이 개 수색에 나섰다는 일화도 있고, 테니스장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 영국군은 거문도 산간에 상당한 숫자의 소를 방목하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매일 소 한 마리씩 훔쳐갔다고 한다. 영국군은 노인에게 소를 돌려달라고 했으나 노인은 소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영국군이 노인이 소를 몰고가는 사진을 증거로 내밀자 훔친 것을 시인하고 돌려줬다고 한다.

당시 사진의 존재를 몰랐던 주민들은 사진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이와 관련해 1960년대에는 거문도에 살았던 90대 노인들에게 영국군의 지배가 어땠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당시 노인들은 영국군에게 배운 영어와 요들송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편 영국은 거문도 점령에 대해 청나라와 일본에 통고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조선에는 아무런 고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 조정에서는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청나라에 의해 뒤늦게 이를 인지했다.

청나라 이홍장 : 귀국의 제주 동북쪽으로 100여 리 떨어진 곳에 거마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문도입니다. 바다 가운데 외로이 솟아 있으며 서양 이름으로는 해밀톤 섬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영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경계 문제를 가지고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군함을 블라디보스톡에 집결시키므로 영국인들은 그들이 남하하여 홍콩을 침략할까봐 거마도에 군사와 군함을 주둔시키고 그들이 오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후 조선은 거문도에 사신을 보냈는데, 영국은 거문도 기항의 대가로 연간 5천 파운드를 지급한다며 거문도 기항을 인정받으려 했다.

하지만 조선은 영토 점령 자체가 부당한 일이라며 즉각 철수를 요구했지만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영국은 거문도를 쭉 점령하다 러시아와 긴장이 완화되면서 거문도를 점령할 명분이 사라졌고, 러시아로부터 남하하지 않았다는 보장을 받은 후 거문도에서 철수했다.

끝으로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으나 주민들하고 관계가 너무 좋아 지금까지도 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한번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당시 거문도에서 질병으로 사망한 영국군 묘지를 찾아가 참배하려고 했는데, 한반도 본토에서 너무 멀었고 일정이 바빠 무산되기도 했었다.

2005년에는 주한영국대사관이 거문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주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별개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배는 매우 잔인했는데, 거문도는 매우 우호적으로 공존해서 이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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