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혁명’ 시기에 학교가 붕괴되어가는 과정

  						  
 								 

중국 인구 3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문화 대혁명’

학생이 스승을 고.발.하.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던, 지식과 역사가 불태워진 시대.

지난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문화 대혁명 시기에 중국의 학교가 변화하는 모습을 게재하여 누리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내용은 프랑크 디쾨터 作의 <인문 3부작 문화 대혁명>을 인용하여 발췌했다.

당시 칭화대학교 부설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홍위병’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마오쩌둥은 학생들을 보면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협력자의 모습을 만들었다. 마오쩌둥은 학생들에게 “저항은 정당한 행위”라고 조언했다. 예민했던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은 쉽게 외부 영향을 받았다.

며칠 후 홍위병은 교사와 관리자들을 공.격.했.다. 8월 4일, 학생들은 학교의 교장과 교감을 ‘흑방의 우두머리’라고 비.난.하면서 죄를 만들었다. 며칠 동안 학생들은 돌아가면서 그들을 폭.행.했.다. 어떤 학생은 곤봉을 사용했고, 학생은 채찍이나 구리 버클이 달린 허리띠를 사용했다.

급기야는 교감의 머리에 불.을. 질.렀.다. 며칠 사이에 분위기는 격양됐고,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베이징 사범대학교 부설 여학교에서였다. 당시 학교 교감이던 볜중원은 공작대가 지켜보는 중에 고.문.을 당했다. 학생들은 교감의 얼굴에 침을 뱉고, 흙을 먹이고,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피.멍.이. 들도록 때렸다. 이후 홍위병은 관리자와 선생을 ‘부르주아 세력’이라고 지칭하며 학교에서 몰아내기로 결심했다.

8월 5일 오후가 지날 무렵이었다. 홍위병은 학교 관리자 다섯 명을 고.발.했.다. 그 중에는 볜중원도 있었다. 홍위병은 볜중원에게 잉크를 뿌리고, 무릎을 꿇린 다음에 대못을 박은 곤봉을 휘.둘.렀.다. 그녀의 무릎과 손바닥이 까맣게 탈때까지 뜨겅누 석탄재를 깐 길을 걸게 했다.

마지막으로 볜중원은 쓰.레.기. 차에 버려졌다.

글자로만 읽어도 끔.찍.한. 상황이 상상되는 문화 대혁명의 시기. 우리는 그 시대를 ‘광.기.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 시대를 보면서 무지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게 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는 거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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