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마스터’ 이성계의 믿을 수 없는 정사 기록 9가지

2017년 June 7일   admin_pok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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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활 실력은 그야말로 전설이죠.

장거리 저격뿐만 아니라 말 타고 돌격하면서 백병전으로 활을 사용해 적을 물리쳤다는 인간병기..

놀랍게도 이성계의 활 실력은 야사뿐만 아니라 정사에도 기록됐다고 합니다.

과연 정사 속에 기록된 이성계의 활 실력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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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본궁 태조유물.

태조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활과 화살.

젊었을 때 훗날 정빈 김씨로 추봉되는 이자춘의 첩이자 여종이었던 김씨가 우연히 까마귀 5마리를 보고는 태조에게 활로 쏘아달라고 부탁하였다.

태조가 한 번의 활을 쏘아 5마리를 동시에 맞추자, 김씨는 태조에게 절대로 이러한 일을

아무데에도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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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 복원품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高安慰)가 오녀산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 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하여 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70명 모두 맞췄다.

이를 보고 고안위는 기겁하여 도망갔으며, 성안의 적군들의 사기가 떨어져 곧 항복을 하였다.

이것을 보고 주위 여러 성들이 항복하였는데 그 수가 1만 여 호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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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이성계

동녕부의 오녀산성을 점령한후, 요동성 전투에서 처명이라는 적장을 사로잡기 위해서 한발은 투구에, 한발은 허벅지에 맞춘 후 “마지막 한발은 니놈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라고 하자 용맹한 처명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항복한 처명은 이후 이성계 막하에서 부장으로 활약하여 황산 대첩 때에도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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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대첩 때 왜구 적장 아기발도의 투구를 활로 맞춰 벗겼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는 왜구와의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곳에서 투구를 놓아두고 세번 쏴 세번 다 맞추어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1보가 대략 1.8m니, 270m 거리를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실력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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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사거리는 웬만한 초기 화약병기를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또한 가지고 있던 화살 20개중 17개를 쏘아 모두 맞추었는데 모두 왼쪽 눈초리에

명중했다고 합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백보(180m) 밖에 있는 배나무를 쏴서 가지에 달려 있는 배를 떨어뜨려 그 배로 손님을 대접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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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타던 팔준마 중 사자황

5월, 경상도 원수 우인열(禹仁烈)이 비보하기를, “나졸(邏卒)들이 말하기를, ‘왜적이 대마도(對馬島)로부터 바다를 뒤덮고 오는데 돛대가 서로 바라다보인다.

’하니, 도와서 싸울 원수(元帥)를 보내 주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이때 왜적이 있는 곳은 가득히 찼으므로, 태조에게 명하여 가서 이를 치게 하였다.

태조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서 적군과 지리산(智異山) 밑에서 싸우는데, 서로의 거리가 2백여 보(步)나 되었다.

적 한 명이 등(背)을 세워 몸을 숙이고 손으로 그 궁둥이를 두드리며 두려움이 없음을 보이면서 욕설을 하므로, 태조가 편전(片箭)을 사용하여 이를 쏘아서 화살 한 개에 넘어뜨렸다.

이에 적군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기운이 쑥 빠졌으므로, 곧 크게 이를 부수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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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을 냅다 치니, 적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반수 이상이나 되었다.

마침내 남은 적군까지 쳐서 이들을 다 죽였다.

태조는 평소에 인심을 얻었고, 또 사졸들이 뛰어나게 날래었으므로, 싸우면 이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주군(州郡)에서 그를 구름과 무지개처럼 우러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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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어느날 신하들이 공민왕 앞에서 활을 내었는데 이성계가 100번을 쏴 다 맞추어 “오늘날의 활쏘기는 다만 이성계(李成桂) 한 사람뿐이다.”

원나라에서 활을 잘쏘기로 유명한 찬성사(贊成事) 황상(黃裳)이 이성계와 함께 활을 쏜 적도 있었는데, 족히 수백발을 쏘았다고 한다.

이 때 황상은 50발을 연달아 맞춘 후, 맞추기도 하고 못맞추기도 하였으나, 이성계는 (수백 발)전부 다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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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진족

여진정벌 당시에는 여진기병의 말의 눈을 쏘아 넘어뜨리기도 했으며 온 몸에 갑옷을 입은 장수가 달려오자 투구를 쏘아 맞혔는데, 그 장수가 놀라서 입을 벌리자 입 안으로 화살을 쏘아 죽였다.

‘1362년 그는 선봉에 서서 말을 탄 채 장수만 골라 쏘는 맹공을 펼쳐 마침내 홍건적의 괴수 사유(沙劉)와 관선생(關先生)까지 참살하고 수도에 제일 먼저 입성해 탈환하는 큰 전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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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의형제이자 무력이 뛰어났던 이지란

의형제인 이지란을 만났을때, 사냥한 사슴을 가지고 다투다가 서로에게 활을 쏘는 대결을 했는데, 이지란의 화살을 모두 피하는 신기를 보였다.

여진족과 싸울때도 여진족들의 화살을 말 위에서 모두 피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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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사용했던 어궁구(御弓具)는 일제강점기까지 보존되었던흔치 않은 활유물이었으며

사실상 조선 최고의 명궁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사람이 쓰는 것보다 훨씬 튼튼한 강궁을 썼는데, 이자춘이 이 활을 보고 사람이

쓸 물건이 아니라며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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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사용한 전어도 103cm이르는 장검

(사진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출처 – //militarycostume.tistory.com/m/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