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만든 조선의 특수부대 ‘체탐자’

  						  
 								 

세종 15년에 조선에 특수부대인 체탐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세종이 다시 없을 기회를 잡아 개척해낸 4군 6진 지역에 배치한 특수부대로 조명국경을 비밀리에 넘나들며 여진족의 동태를 파악할 목적으로 창설되었습니다.

 

특수부대인만큼 많은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무를 수행 중에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했던 직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체탐자가 비밀리에 파악한 여진족에 대한 정보를 통해 여진에 대한 국방을 강화해 침략에 대비할 수 있었는데, 성종때 이들이 해체되고 나서 여진족의 침략이 매우 크게 늘어 체탐자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종때는 강변의 군사기지마다 3명씩 일괄적으로 배치됐는데, 평안도에만 540명의 체탐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특수부대와 마찬가지로 국경 넘어의 적지로 들어가 며칠씩 낮에는 은신하면서 적을 탐지하고 야간에 이동하며 경찰과 잠복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런 체탐자가 1437년, 2차 여진 정벌 당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데요.

 

 

4년 전에 1차 여진 정벌 당시 조선군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는데, 이는 여진의 주요 인물의 은신처, 공격거점 등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2차 정벌 당시 조정에서는 적의 은신처와 공격거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체탐자를 활용하기로 결정합니다.

 

여진 지역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탐지를 한다는 것은 체탐자들에겐 평소 임무 수준이 다른 위험한 임무였기에 1차로 파견된 팀들은 모두 임무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김장’이란 지휘관에게도 이러한 임무가 하달됐는데, 그것은 1차 파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임무였습니다.

 

바로 여진족의 최고사령부 같은 곳인 ‘우라 산성’을 정찰하는 것이였는데요.

 

‘김장’이 이끄는 체탐자 팀은 우라 산성이 보이는 곳까지 잠입해 지세와 지리정보를 확보했고 이들의 노력으로 조선군은 우라 산성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임무를 수행한 체탐자가 왜 성종때 해체되었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무사안일주의’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태평해 보이는데 굳이 위험성이 높은 체탐자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체탐자를 해체했는데, 대가는 매우 컸습니다.

 

16세기 말쯤엔 여진족에게 수차례 기습공격을 당하고 패배하고 말았죠..

 

세종때 뛰어난 활약을 했던 체탐자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