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에 대한 왜곡된 기록을 남겼다.
일본은 “조선은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미개한 나라다. 수직적 봉건주의 사회였던 조선은 망하는 게 필연적이었으며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인은 게으르고 더럽다. 가난, 불결, 폭음, 타락성이 그들의 본성이다”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방문한 몇몇 외국인들은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록을 남겼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조선의 인구수를 토대로 조선이 가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17세기 인구는 1천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인구는 19세기까지 증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대 영토 크기가 비슷한 영국의 인구는 600만 명에 불과했으니 인구수가 꽤 많았던 것이다.
산업화 시대 이전, 인구수가 많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은 조선인들이 “신분과 관계없이, 그리고 일본인과 서양인에 비해 많이 먹는다”고 언급했다.
많이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조선의 쌀 생산량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정말 가난했다면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많이 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인이 게으르고 더럽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는 기록도 있다.
영국인 새비지 랜도어는 “조선 사람은 손은 자주 씻는데 목욕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 씻는 것치고는 많이 더러워 보이지 않는 게 신기하다. 또 조선 사람들은 하루 종일 빨래를 한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보다 덥고 습한 일본의 경우 온천 문화가 발달해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서 기후가 좋은 편이라 현재 온천 문화가 덜 발달해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 대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이 치료를 위해 동래 온천에 방문한 기록을 적은 기행문인 ‘봉산욕행록’을 보면 ‘한반도의 온천은 병을 낫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세종실록에는 세종 20년에 온천 규칙이 제정되어 있다고 나와 있다.
그곳에는 “백성들을 위해 개방한 온천에 왜가 너무 자주 와서 문란하게 사용했다. 임금은 왜가 3~5일 이상 온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율을 정했다”라고 기록돼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의견도 반박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조선, 1894 여름’이라는 책에는 “조선 사람들은 짚신 만드는 것에서부터 광물 캐는 것까지 직접 한다. 조선 사람들에겐 좋은 본성이 있어서 좋은 정부를 만난다면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성과를 이룰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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