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가 시아버지도 홀릴 수 있었던 이유

2021년 November 23일   admin_pok 에디터

양귀비는 엄청난 미모와 매력으로 시아버지와 황제의 눈에 들어 천하를 차지한 동양의 미인이다. 그렇다면 그가 천하를 가진 과정을 알아보자.

현종의 뛰어난 정치


700년대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은 뛰어난 인재를 보는 안목으로 능력 있는 많은 명재상들을 뽑았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온 폐단을 수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더불어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여러 개혁 정책을 펼쳐, 당시 당나라는 유례없던 태평성대를 맞기도 했다. 이렇게 당나라는 그로 인해 한줄기 빛을 보았다.

현종이 사랑한 여성


그러나 그는 사랑에도 열정적인 남자였다. 그는 아내 ‘무혜비’를 정말 사랑했다. 무혜비는 황후는 아니었지만 현종의 무한한 총애를 받으며 사실상 황후와 같은 대우를 받는 인물이었다.

무혜비는 현종의 사랑에 힘입어 더 큰 야망을 꿈꾸었다. 그 꿈은 자신이 낳은 아들을 황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배에서 낳은 아들은 후계자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장차 황제가 될 ‘황태자’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황태자 ‘이영’을 포함한 세 왕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현종에게 난리를 쳤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지만 현종은 이 말을 믿었고, 곧바로 아들 셋의 목을 쳤다.

슬픔에 빠진 현종


이처럼 아들을 황제로 만드는데 한걸음 다가간 무혜비였지만, 그는 세 왕자를 죽인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에 현종은 큰 비통함에 빠졌고, 이때부터 정치를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신하들은 하루하루 침울해하는 황제를 달래기 위해 미모로 유명한 여인들을 데려왔다. 그러나 어떤 미인들 데려와도 현종의 외로움을 달래지는 못했다.

현종에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여성


그러던 어느 날 현종의 눈이 들어온 이가 있었으니, 본명은 양옥환으로, 훗날 귀비의 칭호를 받게 될 ‘양귀비’였다. 그는 미모뿐 아니라 음악과 가무에도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양귀비가 현종이 그토록 사랑했던 무혜비의 아들 ‘수왕’의 아내였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며느리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잠 못 이루던 와중, 황제를 모시는 환관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환관은 현종에게 “양귀비를 여도사로 만들어 신분세탁한 뒤 아내로 맞이하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출가하여 도사가 되면 과거의 모든 일들은 깨끗이 지워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하면 양귀비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현종의 아내가 된 양귀비


물론 양귀비도 야망이 큰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명을 받들어 출가한 뒤, 결국 현종의 아내가 되고 말았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는 22세였고 현종은 57세로, 무려 34살 차이였다.

그렇게 745년 그는 27세에 귀비로 칭해지고 본격적으로 ‘양귀비’가 되었다.

이렇게 양귀비는 단숨에 현종의 아내가 될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는 165cm의 키에 65kg의 몸무게를 가졌으며 풍만하고 농염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피부는 백옥과 같았는데, 투명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온천욕을 즐기고, 피부에 좋다는 열대과일 ‘리치’를 매일 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방관들은 신선한 과일을 공수해오기 위해 800km가 넘는 거리를 말 타고 다녀와야 했다.

양귀비의 비밀


그러나 사실 그에게는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느니, 바로 겨드랑이 냄새가 상당히 지독했다는 것이다. 이에 그의 시중들은 그 냄새를 참느라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축농증이 심해서 냄새를 못 맡았고, 그를 정말 사랑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머리가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던 양귀비는 현종의 비위를 맞추며 무한한 총애를 받았고, 현종은 고위 관직에 그의 친인척들을 등용했다. 양귀비의 언니 세 명에게는 초호화 저택을 선물했고, 특히 사촌 오빠 양국총은 엄청난 권세를 휘두르게 되었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한눈을 파는 동안 나라는 점점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귀비의 부귀영화는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안록산의 난


755년, 부패가 극에 달하던 중 권력의 욕심을 가진 안록산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안록산의 난’이다.

이러한 반란으로 인해 현종은 가족들과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때 기나긴 굶주림으로 힘들어하던 주위 병사들이 양 씨 가문에 대한 불만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양귀비의 최후


결국 권세를 누렸던 양국총은 병사들에 의해 사지가 잘리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양귀비를 죽여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자, 현종은 마지못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허락했다.

그렇게 양귀비는 천하를 차지한 지 10여 년 만에 38살의 나이로 목이 매달린 채 숨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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