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장 자리 하나 나왔으니 일단 8000만원 준비해.”
2012년 8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한 화학업체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던 A씨(46). 또래에 비해 나름 수입이 괜찮았지만 반복된 주식투자 실패로 빚만 늘어가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유흥과 도박에도 손을 대면서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유흥과 도박으로 탕진한 빚은 갈수록 늘었고, 이를 갚을 만한 방법도 딱히 없었다. 그러던 중 A씨는 산단 대기업 직원이라는 점을 이용해 취업 알선을 궁리한다.
자신이 취업을 시켜줄 능력은 없었지만 알선 명목으로 돈을 받은 뒤 빚을 갚겠다는 잔머리였다.
A씨는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환경시민단체 지회장인 장인이 재력이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A씨를 포함해 자신의 아내와 처남까지 산단 대기업에 입사하도록 장인이 도움을 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고가 승용차를 타고, 수백만원 상당의 유흥주점 술값을 계산하는 등 장인이 마치 재력가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거짓으로 취업 합격문자도 보냈다. ‘억대 취업사기극’의 시작이었다.
A씨의 범행을 갈수록 대담했다. 당초 1000만원 수준이었던 거짓 취업 알선료 요구는 한 번에 8000만원까지 늘어났다. 실제 협력업체 직원 4명을 속여 편취한 금액만 3억원에 달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눈치챈 피해자들은 A씨를 사기죄로 고소하려 했다.
고소당할 위기에 처한 A씨는 두려웠다. 그는 순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처럼 위장해 잠적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자신이 운전하던 렌터카를 몰고 전남 여수의 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어 렌터카를 바다에 빠뜨린 뒤 행방을 감췄다. 피해자들에게 빌려간 돈 역시 함께 사라졌다.
이후 10년이 흘렀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처럼 위장해 잠적했던 A씨는 타 지역을 돌며 도피생활을 이어갔고 ‘억대 취업사기극’도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그리고 모두 그가 세상을 떠난 줄만 알았다.
그러나 A씨는 범행 공소시효 12일을 남기고 검찰 정기점검 과정에서 덜미를 잡혔다. 병원 방문내역과 연락처 등을 확보한 검찰이 추적에 나선 끝에 지난해 12월27일 A씨를 검거, 억대 취업사기극도 막을 내렸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2단독(재판장 김은솔)은 지난 15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기업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돈을 편취한 것으로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범행 이후 극단선택을 한 것처럼 위장해 잠적하고 타 지역에서 생활하다가 뒤늦게 검거돼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피해금을 공탁하기는 했으나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0년이 경과한 후 뒤늦게 이뤄져 피해가 온전히 배상됐었는지는 의문이 든다”며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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