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의 선조에 대해서

2017년 7월 17일   admin_pok 에디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임진왜란에서의 선조’라는 게시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왕이었던 선조에 대해 다루어볼까 해

정확히는 임진왜란에서의 선조이기때문에 선조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보지는 마

그러므로 몇몇 부분은 자세하게 안 다뤄지는 것이 있는데 그건 임진왜란 관련이 아니기 떄문에 그런거야. 일단 첫부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서 시작할거야

왜 임진왜란 관련이라면서 그 전부터 말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그 전에 일어난 일들이 임진왜란에 강력한 영향을 줬기 떄문이지

선조는 조선 최초의 방계혈통의 왕이야

즉,직계가 아니었기때문에 정치적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뿌리가 있었던 왕이라는 설명으로도 이어지지(후에 이게 선조 특유의 의심병이 원인이라고 보기도 함)

그래서 선조는 자신의 권력의 입지를 아주 튼튼하게 잡아놓을 필요가 있었어

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버려, 지금도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

 

바로…이간질이지

당시 조선의 궁궐에서 핵심을 담당했던 인사들은 상당수가 동인 출신이었어

그리고 동인들의 대표 수장인 이발은 왕에게도 직언을 하는 강경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어

선조에게 있어서 궁궐의 권력을 지니고 있던 이들은 아무래도 껄끄러운 존재였어

그래서 그는 해결책을 생각하게 되지

[정여립 상상도]

 

바로 반란이야

갑자기 생뚱맞게 동인을 쳐내는 것은 아무리 왕인 그이지만 무리인 일이야

하지만 동인들이 반란을 일으킬려 했다는 단서만 있다면 모든 동인들을 조정에서 내쫒아 버릴 수 있었어

문제는 누가 그 반란의 주인공이 되냐였지, 그러다 적당한 인물이 보이게 되어

바로 정여립이야,당시 정여립은 동인의 인물이었어

정여립은 정치계에서 동인에 있었지만 서인에 몸 담근 전적이 있던터라 , 이를 배신자로 본 동인의 정적 세력인 서인에게는 눈꼴 사나운 존재였어

그리고 이걸 선조는 기가막히게 캐치했지

갑자기 조정에 지방의 여러 신하들이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는 상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어

당연히 동인들은 그게 뭔 개소리여 아닌데여?? 라는 스킬을 시전했고 그외 반대파들은 “정여립 개가 병사들 모집한데요, 반란준비중인듯,선조님 큰일임” 라는 서로 반대되

는 여론이 형성이 되어(심지어 병조판서인 신립을 정여립이 죽이려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까지 지껄여졌어,근데 임진왜란때 신립이 한 병크를 기억하면 이 말이 차라리 진

실이었으면 좋았을걸이란 생각이 드는 건 함정)

처음에 정여립의 난을 조사하기 위하여 처음엔 동인의 인물을 파견하는 척 했으나 바로 파직시키고 강경한 서인파인 정철(관동별곡 그 사람 맞다)을 보내게 되고

결국 정여립은 죽도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자살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어

여기서 여러가지 가설이 나뉘게 되는데 실제로 정여립이 반란을 일으킬려 했다가 죽도로 도망갔다는 거랑 걍 죽도 놀러갔다가 조정에서 보낸 인물들한테 끔살 당했다는

건데, 대부분의 증거들은 거의 후자 쪽으로 봐

정여립은 죽도 가기 전에 님들아, 나 죽도 좀 갔다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과 부하들을 데리고 갔는데 반역을 일으킨 인물이라면 어떤 ㅁㅊ놈이 나 여기로 도망감이

라고 말하고 도망갈까??(게다가 도망가기도 힘든 섬…삼별초도 아니고)

게다가 집에는 반역하겠다는 문서가 노골적으로 쌓여있었다고 하는데,만약 정말 반역을 일으킬 인물이었다면 다 불태우고 갔겠지…(반역이 조작되었다는 중론의 이유)

하튼 어차피 정여립은 죽을 몸이었어

조정의 군사 피해 도망가면 역적이어서 도망간 거니 죄가 인정되는 거고

안 피하고 그대로 붙잡혀주면 실컷 고문당하다가 역적이라고 말하고 죽을 거고…(여러모로 안습, 왜 자살했는 지 대충은 알 것 같다)

 

결국

정여립 가문은 끔살

정여립=동인 이란 논리로 이어져

동인의 수장,이발도 끔살

정여립이랑 편지라도 한장 주고 받은 놈은 끔살,다 끔살(이게 어느 정도라면 비유하자면 10년전에 카톡 단톡방에서 잠깐 만난 인연 있는 애가 있는데, 그 애가 나중에 간첩

인걸로 밝혀졌다고 단톡방에 있던 애들 다 끌려가서 사형당하는 수준…)

김빙이란 사람은 어쩔때 저절로 눈물이 나는 안습한 병이 있었는데 이들을 심문하던 중 옆에 있다가 눈물을 흘리는 병이 도지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는 거 보고서 “너ㅅㅂ 역적들을 위해 눈물 흘리냐?너도 역적,사형!!”이라는 안습한 행보를 걷게될 정도

근데,정여립은 이 당시 전라도에서 대동계라 하여 그 당시 급증하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일종의 의용군을 모집중이었기떄문에(조정입장에서는 반란군이지) 순식간에

전라도는 반란의 땅이 되어버려(이전까지는 기록상에 보면 평등하게 대했다고 함,유일하게 차별받던 곳은 조사의의 난으로 인해 반란의 땅이 된 함경도…근데 사실 조사의

의 난도 뒤에서 이성계가 이방원에 대한 불만으로 주도했다는 게 중론이므로 결국 함경도는 이성계떄문에, 전라도는 선조때문에 반란의 누명을 쓰게 된 거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정여립떄문에 그렇기보다는 동인의 수장인 이발이 호남에서 대표적인 명문가여서 그곳에 그의 세력이 있었기때문에 후대의 인물들이 나올 것을 선조가 두려워

했다는 설도 있어, 사실 정여립 자체는 큰 세력이라 보기 어렵기떄문에 이발떄문이라는 게 거의 확실해

이로 인해 기옥사화라 하여 엄청난 정치적 학살이 벌어지는데, 사람들이 흔히 아는 기묘사화보다 훨씬 규모가 컷다고 해

위의 짤에 나와 있듯이 천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고 해

당시 조선인구에 천여명…게다가 저 천여명은 조선에서의 최고의 엘리트 출신들이었고,조선은 임진왜란 전에 천여명에 달하는 인재들을 함꺼번에 잃어버려

(잠깐, 전쟁전에 인재 학살은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애기가 아닌가…선…선…선탈린)

그리고 이 빈자리를 서인들이 채우게 되면서 조정은 서인들의 독주로 이어지게 되고 질 낮은 자가 높은 직에 오르는 경우도 많아졌어

결국,이 일은 대신들을 몰아내면서 왕권의 강화를 이루게 되었긴 했지만(오직 이것만 긍정적)

부정적으로는 인재몰살,최고 전성기던 호남학파의 몰락으로 실전되어진 학문들,일본의 침략계획에 신경을 못 쓰게 됨,질낮은 자들의 관리 채용의 문제로 이어져

 

하지만 이 이후, 어느 정도 여유가 생에디터 선조는 일본의 침략 의도를 알게 되고 이에 대한 방비를 세우게 되는데….

 

[신립]

문제는 희대의 병크짓…육군!!육군!!조선의 육군은 세계 제일이다!!!(이 이론은 400년후 그 후손에게도 이어지게 되는데..)

신립:우리 육군은 일본 육군따윈 다 이김, 근데 수군은 약함
선조:ㅇㅋㅇㅋ,그럼 어찌할까
그래,성을 높게 짓고, 수군도 육지에서 싸우게 하자(조선 최초의 해병대는 구라고 걍 ㅄ짓)
류성룡:님들, 근데 일본은 조총이라는 신세대 무기가 있다는데요??
신립:조총 명중률 안 좋음ㅋㅋ,문과충이 뭘 알어ㅋㅋ 우리 군한테 피해 안 감ㅋㅋ(그리고 그는 직접 이걸 실험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선조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다수의 읍성을 짓게 만들게 해

문제는 이 성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백성들의 노동이 필요한 일이라 백성들은 그야말로 전쟁도 일어나기 전에 민심이 왕에게서 떠나버려

경상감사 김수의 경우 백성들의 원한을 너무 많이 들어서 수많은 기록에도 남아지고 이런 고초를 당한 탓에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순왜(임진왜란 당시의 친일파)가 경상도

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되지,얼마나 한이 됐으면 그랬겠어

게다가 더 열 받는건 이렇게 만들어낸 수많은 성은 별로 도움도 못 되고 왜군한테 뺴앗겨져, 왜냐하면 질 대신 양이라는 전형적인 공무원식 보여주기로 만들어진 이 성들은

평야(우리나라에 널린 게 산인데…)에 만들어졌기에 방어에 극도로 약했고 결국 전쟁이 발발되자 왜군한테 다 넘겨지고 결국 기존에 있던 산성에서 백성들은 농성하게 되지

그리고 수군 증강에 힘을 안 쓰면서, 다른 수군은 세력이 약화되면서 일본 수군들한테 그냥 무시당하고, 그나마 전라좌수영 맡던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날 때를 대

비해 수군의 힘을 기르면서 임진왜란 떄 큰 활약을 펼쳐

 

그리고 전쟁 발발

봉화대에서 400여척의 일본배가 침입한다는 경보까지 받았으나 경상좌수영의 수군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고 결국 부산에서 2000여명의 군민들이 농성하다가

중과부적을 못 이기고 모두 다 최후를 맞이했어

그리고 경상좌수영의 박홍은 경주로 도주후 그냥 증발…(말 그대로 증발..걍 사라짐)

그리고 경상우수영은….모두가 다 아는 그 분(임진왜란에서 이순신 다음으로 유명하신 그분) 원균은 노량진으로 ㅌㅌ

(뭐 애초에 욕할 수 가 없는게 선조 명따라 수군은 신경도 안 쓰던 때라…)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선조의 부름을 받아 총애를 받던 조선의 끝판왕(안 좋은 의미로 말 그대로 끝판왕이 된건 함정)

육군덕후인 신립이 조선의 최정예 육군을 데리고 충주로 왜군을 맞이나가 그들을 철저히 방어하기로 하지

(신립은 내가 평가하기에 전형적인 애국 마케팅으로 인해 의외로 고평가된 인물이니 난 오늘 존나 까겠다)

신립이 선호하는 전투방식은 기마전술이야, 그는 북방에서 여진족과 여러번 승을 가진 전적이 있기에 기마전술 하나에는 자신이 있었어

그리고 전형적인 머리보다는 하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뿌리채 있는 장군이었어(안돼…안돼…이거 어떤 군대랑 비슷하잖아..)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부하들이 일본군에 의해 고립되어져있다는 걸 부관 중 한명이 정보를 가르쳐줘서 전황을 파악해줄려 하자

“너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 군 분위기가 뭐가 됨?ㅅㅂ너 사형” 뭐 이 정도…

결국 그 고집은 그는 물론 조선의 군대를 죽음으로 이끌었으니

산이 거칠고 험하고 방어하기 쉬운 문경 새재를 놔두고 저 파란색 빗금친 부분의 탄금대에서 방어를 하기로 해…

옆성은 충주읍성인데 심지어 일본군한테 뻇김…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도망갈 곳은 절대 없어

뒤는 강이고 앞에는 산과 성으로 둘러 쌓여져 있지

김여물은 문경 새재에서 성위에 자리잡고 싸우기를 원했으나 신립은 평야지대인 탄금대가 그의 주특기인 기마전술을 펼치기에 알맞다고 보았어

조선의 원거리 무기가 활이고 일본의 장점은 조총인데 곡사화기인 활과 직사화기인 총이 어디서 더 유리할 지는 뻔한 애기지

성위에서 활을 쏴대면 총도 어쩔수 없는 것이지만 평야에서의 싸움은 총이 훨씬 유리했어…

게다가 신립은 미친듯이 말타고 개돌이니…걍 총쏴면 쓰러지지

탄금대는 심지어 논밭으로 이루어져있어서 말이 제대로 활동하기도 어려운 터라 기마전술도 제대로 못 쓰고 신립은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탄금대로 몸을 던졌어

(ㅅㅂ근데 몇몇 교과서는 아직까지도 용맹한 조선의 장수가 몸숨바쳐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이 자살한 걸로 나온다 말이야…)

결국 선조는 북방 저 멀리로 대피하고 조선은 위태로워져

 

하지만 진짜 조선의 끝판왕이 나오기 시작했지

[이순신]

이순신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 대비했던 전력과 타지역의 패배한 수군들이 휘하의 수영으로 모이면서 세력이 강성해지자 일본의 수군에게 연전연승을 거둬

당시 일본군은 곡창지대였던 전라도를 얻어 식량을 조달하기 원해서 이곳을 병참기지하여 조선을 세력하에 두길 원했어

그러기 위해선 이순신을 꼭 꺽어야 했지

하지만 문제는 불가능했음…인간이 지질 않음

그래서 육지로 진격하려고 해도 이순신 위에는 그 유명한 장군

[권율]

권율이 버티고 있었으니 왜군은 공략하기가 힘든 일이었어

권율은 전라도를 침공하려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맞아 이치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방어선을 완벽하게 지켜냈고

이떄문에 어려움에 처한 일본은 전라도를 놔두고 진격하자니 후방에서 권율이 공격을 하면 보급이 끊겨서 전멸할 수 도 있는 문제가 생겼어

그렇다고 옆으로 쳐들어오자니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에서 “같이 죽자 ㅅㅂ놈들아”하면서 진주대첩을 벌이고

결국 왜군이 불안하던대로 위에서는 명나라가 남하하고 뒤에서는 권율이 북상해서 고립될 위기에 처하자

결국 남하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권율이 행주대첩을 이끌면서 또 일본군은 큰 타격을 입게 됨(여러모로 안습이다)

 

한편…이떄 우리의 주인공인 선조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하면

선조는 요동으로 도망가고 싶어했어…(어쨰 어떤 분이 생각이 난다) 근데 명나라는 하도 어이 없어서 조선이 일본하고 짜고 명나라 정벌하려는 거 아님??일 정도로 황당

하게 여겨서 들어가지는 못 했어.(선조가 그 정도 머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은 백성들 모집해서 군사를 양성하라니까 민가 약탈질을 하는 아주 막장스러운 짓을 해버렸고

선조는 그의 너그러움으로 이를 용서했지.(우리 임금님 마음씨는 알아줘야된다)

그나마 광해군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왜적에 맞서 싸우기로 하자 선조는 광해군이 반란을 일으킬려는 거 아닐까 하는 쪼잔한 의심을 하며 광해군에 대한 견제를 하기

시작했어(민가를 약탈하는 왕자는 봐주고 왜적에 맞서 싸우는 왕자는 의심하다니…)

 

 

하튼 임진년의 전쟁에서 일본이 패색을 보이자 일본은 강화를 원하는 낌새를 보였고 그 새 선조는 딴 생각을 하게 되지

아까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왜적들은 전라도 지역에 권율과 이순신,김시민등 명장들의 등장과 전투민족화된 농민들에 의해 쳐들어 가지를 못 했어

보통 이러면 오 ㅅㅂ 재네 잘 싸우네,그러면 재네 칭찬해줘서 잘 하라고 해야되겠다라는 게 보통 인간일텐데

선조는 이러한 생각이 들어

내가 저 지역에 정여립의 난으로 인해 한 짓도 있고 차별도 했으니 불만도 있을텐데 이순신이 재네 이끌고 나한테 쳐들어오면 나 좆되는 거 아님??

이라는 결론으로 도달하게 되고 견제를 시작해

마침 일본의 이중간첩인 요시라는 일본군의 수장중 한명인 가토가 부산으로 건너온다는 정보를 건네줬어

선조는 이순신에게 그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을 했지만

이순신은 그 정보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라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원균]

선조는 이순신이 명을 제대로 안 받아들인다 생각하여(이전에 복잡한 전투 내용이 있지만 너무 피곤해서 생략) 파직하게 만들고 백의종군을 시켜

여기서 고문을 시켰다 안 시켰다 말이 많은데,아마 100프로 시켰을 거야,선조의 말중에 이순신은 역적이니 목을 잘라야 한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 적혀있으니 고문

안 시켰겠어…선조 성격에

위의 원균은 일본 이중첩자의 말을 찬성하여 이순신의 파직에 영향을 주기도 했지

그리고 이순신의 후임으로 원균이 자리에 올랐고, 칠천량 해전에 300척의 배를 증발시켜버려

사실 원균은 이순신의 자리에 오르고 얼마 안 있어서, 이중첩자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된거야

원균도 어느 정도 무과에서 뼈대있는 가문의 자손이니까, 어느 정도의 병법은 알았기 떄문이지

싸워야 할 지리가 일본에게는 순풍이고 아군에게는 역풍이니,바람이 중요한 수군입장에서는 완벽한 무덤인 거야

그래서 원균은 전투를 벌이기 싫어했지만, 이순신 쫒아내기 전까지는 실컷 전투 안 벌인다고 이순신을 깐 전적이 있기 떄문에 자신은 꼭 전투에 나가야 하는 입장이었어

결국 또 좆같은 핑계를 만들어버려

그래서 불가능한 조건을 걸지, 육군 없이는 못 싸운다는 핑계를 대며 전투를 피하려 했어

 

원균:육군의 지원이 없으면 저기서 못 싸움, 육군이 먼저 점령 좀 해서 자리 좀 깔아줘봐, 한 육군 30만명하고 같이 싸우면 이길듯

권율:뭐 이 10새꺄?!, 그래서 내 육군 달라고?? 이순신 쫒아내더니 내 군사도 데려가게?? 못 줘

선조:줘

권율,원균:(….!!!???)

 

결국 권율 휘하의 약 6천여명의 병사가 원균 통솔하에 들어가고 여러 전투와 칠천량 전투에 패배하면서 수군과 함께 모두 전사하지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전멸한 후, 선조는 여러모로 충격받고 변화를 꾀하기 시작해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남해통제권을 잃으면서 조선의 모든 바닷가를 일본군에게 그대로 넘겨주게 생겼고

남해안 일대의 섬주민들은 선조 도움없이도 잘 막고 버티다가 수군이 다 없어지면서 졸지에 일본군에게 전멸당하게 생겼어

일단,이순신부터 불러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시키고(죄도 없애주니까 열심히 싸워!!ㅋㅋ)

근데 사실 이순신이 복직한 것도 선조의 뜻이라기보다는 신하들이 하도 이제 이순신밖에 없다니까 하기 싫은데 억지로 했다고 함

임진왜란당시 크게 활약했던 공을 높이 삼아 전라도에 대한 차별정책을 제거하겠다는 뜻의 의도를 나타냈어(임진왜란떄 잘 싸워줬으니까 정유재란도 잘 싸워,용서해줌ㅋ)

(근데 두 개다 애초에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선조가 뒤집어씌운 거라는 건 함정)

그리고나서 선조는 이순신에게 이제 수군 폐지하고 걍 충청도에서 같이 육군으로 싸우라는 뜻을 전하는데(아직도 못 버린 육군 사랑..뭐 수군이 전멸상태긴 했지만)

이순신은 “ㄴㄴ신에게 12척 있음,금신전선 상유십이”라는 엄청난 기세의 장계를 올리고

 

 

명량 대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과로 일본 수군을 다 털어버리면서 남해를 다시 통제하로 만들어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계기라면 과거 전쟁은 군용 식량은 커녕 통조림도 없기때문에 보급 체계를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이 대첩을 통해 바다를 조선 수군이 통제하게 되면서 일본은 보급에 차질을 빚게 되고 결국 정유재란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거야

당시 조선땅에 상륙한 일본 육군은 한양으로 진격할 생각이었지만 명량 대첩으로 인해 보급로가 막히면서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처하게 되지

결국 조명연합군에게 울산에서 털리면서 후퇴 의지를 가지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급후퇴 하기 시작하지

그리고 이 후퇴세력들을 이순신이 다 처리하면서 노량해전에서 전사함과 동시에 전쟁도 끝나고 길고 긴 고난은 이제 끝이었어(뭐 곧 있으면 위에서 내려오지만..)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걸로 말이 많지…

싸우다 전사한 거냐 아니면 자살에 가까운 전사인가…

솔직히 이건 정확하게 말할 수도 없는 거고, 뭐 그래도 이순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해보면 선조 성격상 그닥 좋은 대접은 못 받았을 거야

자기 아들도 의심하는 사람이 타인을 의심 안 할까, 게다가 이순신의 복직도 그때까지 반대하던 사람이…

어쩃든 이순신이 죽은 후, 이순신은 권율과 원균과 함께 선무공신 1등에 오르게 되니까 그래도 위안이 되지…

근데 이순신과 권율은 인정하는데, 왜 원균이 저기 껴있냐고??

왜냐하면 원균을 저렇게 선무공신에 놓지 않으면 선조 체면이 서지 않기때문에 원균을 같이 올려준거야

선조가 죽고나서 눈치를 안 보게 되고 모든 기록들이 원균ㅄ색히라고 욕하기 시작하지

자, 그러면 선조는 이순신과 권율등 장군들을 어떻게 평가했냐면…

“니들이 뭐 한 게 있음, 걍 명나라가 도와줘서 이긴 거지ㅋㅋㅋ”

를 시전하면서(그나마 이순신과 권율은 공 인정 조금 함,그러면서 원균도 공 인정한건 함정) 마지막까지 희대의 병크짓을 벌여

그리고 이순신 휘하에서 명량대첩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안위의 경우, 정여립의 아주 머나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공을 하나도 인정 못 받는 안습한 행보를 걷게 되는데

(이 안위가 누구냐면 명량 본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묘사에서는 거북선 불태운 배설을 활로 쏴 죽이는 인물,그리고 이순신이 저격당할 위기에 처할 떄 활로

구해주는 그 인물이다)

 

[영화”명량”의 안위,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최종병기활”의 류승룡 부하였다는 걸 알 수있다]

 

 

글 출처 – 개드립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