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미국 장군

2017년 August 18일   admin_pok 에디터

미국 오하이오 출신의 前 미국 육군 항공대 장군이었고 후에 미합중국 공군의 장군이 된 군인.


가난한 이민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아무런 연줄 없이 능력만으로 장군까지 올라갔고 비행기가 처음 하늘을 비행한 시대에 태어나 항공기 기술이 미국 전력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데 큰 공적을 세웠다.

별명은 Iron-ass, Big Cigar, 굳어버린 오른쪽 얼굴을 가리려고 시가나 파이프 담배를 물어서 붙었다.

■ 르메이가 주도한 일본 본토 공습

르메이는 일본 육군 항공대가 충칭 등 중국 도시들에 소이탄으로 효과적인 공격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반대로 적용해 일본 도시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을 구상하던 1945년 2월 대일 폭격을 책임지는 제21 폭격기 사령부급 부대 예하에 전투직종별 항공사령부가 편제되어있었지만 이후 사령관에 취임해 대일 폭격을 총괄한다.

부임 직후 효율이 떨어지는 고공 정밀 폭격에서 좀더 위험하지만 효과적인 저고도 소이탄 폭격으로 전환하였으며, 목제 가옥과 건물이 많은 일본 도시를 대상으로 한 그의 작전은 성공과 무자비한 파괴를 가져왔다.

● 1945년 3월 10일 거행된 도쿄 대공습

26만 7천 채의 건물이 파괴되고, 도쿄 거주자 8만 9천명이 사망했으며 6만 6천 명이 부상당하는 등 일본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만들어낸 피해를 상회하는 기록이다.

● 일본을 향한 ‘기아 작전’

또한 대량의 기뢰를 폭격기로 투하하여 일본의 주요 항구를 봉쇄 일본 전역에 기아를 몰고 오기도 했다.

비행장을 폭격하는 와중인 4월에는 기아 작전(Operation Starvation)의 일환으로 폭격기의 일부를 떼서 항만지역에 기뢰를 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직접 폭격이 아닌것이 르메이 장군 개인적인 성향에선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작전은 진행됐다.

그 결과 한달간 기뢰가 만 2천여개가 살포되었는데, 약 100만톤에 달하는 일본 수송선단을 격침시키고 본토로 들어가는 원자재 수송량을 80%나 잘라버릴 수 있었다.

또한 현대까지도 연안 해운에 대한 의존이 큰 일본의 국내 교통망도 동시에 마비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도쿄 대공습에 가려지긴 했지만 전후 분석 보고서는 이 기뢰 살포가 일본 본토 공격 도중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작전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 작전으로 일본 전역에서 민간인 30만 여명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미군 장성들 중에서 민간인을 죽인 숫자로는 가장 높은 것이다.

이렇게 일본 전역의 공업 기반을 쑥 재배지로 만들어버린 덕분에 몰락 작전을 굳이 벌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제의 공업 생산량이 급락해서, 원자폭탄과 함께 수십만명을 죽였지만 결국 수백만명의 목숨을 살린 비정하지만 현실주의적인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전후 분석 결과로는 해상 수송을 차단한 상태에서 일본의 철도망을 끊어 내부에서부터 굶기는 것이 효율적이었을 것이라 평가도 존재한다.

그의 지휘 하에 종전 직전인 1945년 7월 시점에서 일본 주요 도시의 60%가 잿더미로 변했으며, 일본의 공업생산량은 폭격 전 대비 40% 이하로 떨어졌다.


2017. 08 저작권자(c) 지식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