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사, 원폭 싣고 가는 중 침몰당한 미 군함

2017년 August 22일   admin_pok 에디터

저는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것입니다. 해군이 그에게 내린 처사는 용서할 수 없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I would not have hesitated to serve under him again. His treatment by the Navy was unforgivable and shameful.)

– 1999년 설립된 추모비 앞에서, CA-35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자 플로리안 스탐 –

 

1945년 7월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의 승리가 확실시 되던 때,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CA-35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이 오키나와 남부, 괌에서 레이테 섬으로 이동하던 중 일본 해군의 잠수함 I-58의 뇌격을 받고 침몰한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해군의 적절치 못한 대응이 희생자 수를 늘리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이면서 미 해군의 흑역사로 남는다.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

 

 

USS인디애나폴리스 함은  5함대 사령관 ‘레이먼드 스프루언스(Raymond Ames Spruance)’제독의 기함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오키나와 공격에도 참여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기록한 함선이다.

하지만 대형 전투함이기에 자체 스크류 소음이 크고, 대잠작전 관련 장비는 탑재하기 어려워 구축함급 이하의 호위함 대동이 필수적이었다.

 

1945년 7월 16일, 인디애나폴리스는 함장인 ‘찰스 B. 맥베이 3세 항해대령’의 지휘 아래 1,196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미 육군 항공대의 B-29 폭격기가 출격 대기 중인 티니안 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역사를 뒤바꿀 물건인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싣고 있었는데, 당시 미 해군은 이 임무를 당연 극비임무로 취급했으며 일본 해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단독’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한다.

함장인 맥베이 대령은 ‘단독’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에 구축함 등 대잠 호위함을 여러번 요청했으나 지휘부는 이를 묵살했다.

 

그리고 원폭 재료를 싣고 상부의 명령대로 ‘단독’으로 임무 중인 인디애나폴리스는 7월 30일 새벽.

일본 해군의 잠수함인 I-58이 인디애나폴리스를 발견하고 어뢰 6발을 발사. 이 중 2발을 명중시키며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킨다.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가 침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2분.

맥베이 대령은 침몰 직후 즉시 구조신호를 보냈고, 승조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려. 폭발 직후 사망한 300여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승조원들을 모두 탈출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때 생존자는 약 900명에 가까웠는데, 즉시 구조신호를 보냈음에도 무려 4일이나 지난 8월 2일 정기적으로 정찰을 하는 해군의 PBY카탈리나 비행정이 생존자들을 발견하고 구조를 시작한다.

발견 후 약 이틀간 구축함까지 동원되어 모든 생존자를 건져올렸는데, PBY카탈리나 비행정이 생존자들을 발견하기까지 전.

약 4일 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던 생존자들은 식수나 의약품이 매우 부족했기에 서서히 죽어가거나 환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주변 해역은 상어 떼의 출몰지로 피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처음에는 시체를. 그 다음에는 부상자를 노리기 시작한다. 이 순간까지도 맥베이 대령은 조명탄 그리고 거울까지 동원해 계속해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 침몰 직후 맥베이 대령이 보낸 구조 신호는 어떻게 된 것일까?

당시 태평양 전쟁 승기에 취해있어서였을까. 미 해군 통신 중계소는 이를 감지했음에도 그 누구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한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고, 다른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노느라 신호자체를 무시했으며, 한 수신소는 일본 해군의 계략이라고 판단해 이를 무시했다.

 

훗날 인디애나폴리스 생존자들이 모두 구조된 후, 맥베이 대령이 해군본부에 “왜 구조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으나 해군본부는 “구조신호는 없었다”라는 대답 뿐이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미 전역이 들썩였는데, 해군은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맥베이 대령을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해당 군사재판이 책임 떠넘기기가 된 것도 미해군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약 700척의 군함을 잃었지만 자신의 함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 함장은 맥베이 대령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책임 떠넘기기에 걸맞게 죄목도 ‘적의 공격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함을 침몰시킨 것’이었는데, 자세히 보자면 ‘중순양함이 어뢰 회피를 위한 지그재그 기동을 하지 않았다’는게 큰 이유였다.

맥베이 대령은 다행히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사면으로 복직되었으나, 사실상 불명예 제대를 당했고 이 후 오명으로 유족들의 비난을 뒤집어쓴 채 1968년 70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누명으로 유족들의 비난받은 맥베이 대령은 1997년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한 소년에 의해 재평가받게 된다.

1997년 헌터 스콧이란 11살 소년(1985년생)은 National History Day 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Triumph & Tragedy’ (승리와 비극) 이라는 그 해의 테마에 어울리는 미국 역사 기념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다.

헌터 스콧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죠스 시리즈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 흥미를 가지고 자료를 모아보았다.

그런데 실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자, 약 150명 가량의 생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자료를 모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맥베이 제독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음을 알고, 숙제를 넘어서서 제독의 명예회복을 위한 탄원 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 소식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1999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을 통해 미의회 공식 결의안으로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편지가 존 워너 의원 앞에 전달되었으니…

 

미합중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 귀하

저는 당시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일본제국 해군 잠수함 I-58의 함장이었던 전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입니다.

저는 귀하의 결의안이 1945년 7월 30일 격침된 미해군 중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함장 故 찰스 버틀러 맥베이 3세 대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저는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법정에 세워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계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전 인디애나폴리스가 어떤 상태라도 격침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승조원들은 끔찍했던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서로를 용서했으며, 이제 귀하와 귀하의 나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맥베이 대령에게 씌우진 부당한 혐의를 벗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 전 I-58 함장,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 –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킨 I-58 함장인 하시모토 모치츠라 중좌가 편지를 보냈고, 편지의 목적은 ‘맥베이 제독’의 명예회복이었다.

하시모토 모치츠라가 200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조금만이라도 늦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맥베이 대령의 잘못으로 남을 뻔 했다.

맥베이 대령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권한으로 복권됐으며, 그를 포함한 316명의 생존자들에게 ‘은성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이 소식에 살아남은 승조원들은 맥베이 대령의 묘지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이 소식을 전했다.

 

저는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것입니다. 해군이 그에게 내린 처사는 용서할 수 없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 1999년 설립된 추모비 앞에서, CA-35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자 플로리안 스탐 –

 

또 이 사건으로 미 해군은 충분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함을 손실/대파시킨 함장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게 되었다. (2001년 실제로 미 해군 구축함 USS콜 함이 아덴만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함이 크게 파손되었지만, 충분한 조치에도 막을 수 없었던 상황이 인정되어 책임 추궁을 받지 않았다)

 

한편 함장의 복권 운동을 벌였던 헌터 스콧은 해군 ROTC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 후 임관, 2012년 대위 계급으로 헬기 조종사로 복무하고 있으며, 이 사건은 2016년 ‘USS indianapolis:Men of courage’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된다. 맥베이 대령 역은 니콜라스 케이지.

 

덧붙여 침몰 72년만인 2017년, 인디애나 폴리스함이 해저 5천 500m에서 발견된다.

CNN에 따르면 민간 탐사대를 이끈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이 “필리핀해 해저 5천 500m아래에서 인디애나폴리스함 잔해의 위치를 확인했다”고 발표했고, 이들은 6천m까지 잠수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해양조사선을 이용해 잔해를 찾아냈다.

2017. 08 저작권자(c) 지식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