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패배자로 남게 된 항우의 실수 TOP 8


 						  
 								 

서초패왕 항우 BC232~BC202

초나라 명문 장군 집안 출신으로 초한전에서 한 고조 유방의 라이벌로 유명하며 그의 사후평가로는 중국 역대 무력 최강자로 통한다.

하지만 무력의 최강자라도 그는 승자가 되지 못했다.

과연 그가 승자가 되지 못한 8가지의 실수는 무엇일까?

1. 진나라 투항 20만 대군 생매장

진나라 백기 장군이 조나라 40만 대군 생매장 다음으로 스케일이 큰 사건이다.

항우군은 진나라 명장 장한이 투항해온 20만 대군을 데리고 전투시켰으나 초나라 항우군에는 보급 문제(항우가 죽을때까지 보급 지원 문제는 따라다니게 된다.

반면 유방은 행정보급에 유능한 소하 덕분에 천하를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와 더불어 초나라-진나라 병사간의 사이가 악화되어 진나라 20만 투항군의 반란을 염려하여 항우는 20만 대군 생매장을 지시하게 된다.

이 결과로 항우의 잔인성이 널리 알려졌으며 진나라 백성들의 원망을 사 민심을 잃어가게 된다.

이와 반대로 유방은 진나라 3대 황제 자영의 투항을 받아주고 약법삼장이라는 법률을 반포하여 민심을 얻게 되었다.

2. 진나라 3대 황제 ‘자영’ 처형 및 아방궁 소실, 함양 백성 학살

진황제 자영은 할아버지 진시황과 숙부였던 호해와는 전혀 폭군과 무관한 군주였다.

진나라의 간신 조고가 자영을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자영은 이를 먼저 손써두어 조고를 제거하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황제 등극했다.

하지만 50일도 안되어 유방에게 투항했고 유방은 홍문연에서 항우에게 겨우 살아남자 자연스럽게 자영의 거취 문제는 항우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진나라 사람이라면 치를 떨었던 항우는 진나라 멸망 선언과 동시에 ‘자영’을 처형하고 진나라의 상징이였던 아방궁을 소실했고 함양백성들을 학살하였다.

진나라 백성의 민심에서 완전히 없어진 계기가 되었다.

3. 초나라 회왕 제거

초나라 회왕의 존재는 항우에게는 항시 거슬리는 존재였다.

항량과 항우가 초나라를 재건하였을때 범증의 충고에 따라 ‘초나라 왕실 혈통을 찾아야 전쟁의 명분이 된다’ 라는 조건 때문에 모셔온 것이지 실제로 모셔 오려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양치기 소년 시절이 아닌 점점 세력을 넓히려고 했던 회왕이기에 항우는 더 거슬리기 전에 회왕을 제거하게 되고 마는데 이 사건으로 초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잃어가기 시작하게 된다.

유방은 항우제거를 위하여 ‘초나라 회왕의 복수를 하자’라는 슬로건을 각 제후들에게 뿌리고 명분을 얻게되고 훗날 항우가 죽을때까지도 유방은 ‘초나라 회왕’ 제거 한걸로 항우를 무한 디스한다.

4. 한신 미등용

항우의 최대 실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초의 집극랑(창잡이 하급 호위무사) 신분이였던 한신을 범증은 한신의 예사로움을 놓치지말고 높이 쓰자고 항우에게 등용 제안을 했으나 한신의 찌질한 과거 시절을 아는 항우는 이를 거절했고 그를 등용시키지 않은 것이다.

당시 출세욕이 강했던 한신은 초나라를 버리고 파, 촉군에 유배되어 가는 유방을 따라 나서게 되는데 무력의 항우를 군사적으로 제압한건 한신만이 있었기에 유방은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만약 유방의 옆에 한신이 없었다면 항우가 과연 졌을까?

5. 수도를 최적의 조건인 ‘함양’이 아닌 고향 ‘팽성’을 정한 것

당시 진나라 수도 함양은 그야말로 중원의 노른자 땅이였다.

백성과 영토를 다스리기에 최적의 조건이였고 자원도 풍부했으며 지형조차 요새였기 때문에 마땅히 수도로 쓰여야 했으나 남다른 고향사랑을 자랑하던 항우에게는 금의야행(비단 옷입고 밤길에 돌아다니면 쓸모없다)이라 생각되어 수도를 팽성에 정하고 함양을 포함한 삼진 지역을 투항한 진나라 장수 장한, 사마흔, 동예에게 나눠줬다.

항우의 잘못된 결정에 어떤 유생은 초나라 사람은 목욕한 원숭이라고 말하자 항우가 발끈, 참살시켰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자 어떤 사람도 항우에게 수도를 함양 천도를 거론하지 않았다.

6. 진나라 멸망 후 공신들에게 논공행상 불만을 제공

항우는 진나라 멸망까지의 장수 및 제후들에게 논공행상을 하게 되는데 유격대로 활약했던 팽월은 아무런 이득도 없고 자신의 정치적인 라이벌 유방은 1등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국의 미지의 땅, 아프리카와 같았던 파, 촉군으로 유방을 보내게 된다.

특히나 팽월같이 유격대로 대 활약했던 공을 무시했기에 팽월은 유방 밑에 들어가 항우의 보급 문제와 뒷통수를 무한으로 치는, 항우에게 죽을때까지 골머리 썩게하는 존재가 남겨지게 되었다.

7. 홍문연에서 유방을 제거 하지 않았다

당시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했던 유방에게 “죽기 싫으면 함양 앞마당 홍문으로 오라”고 호출했다.

홍문연회에서 항우가 유방을 죽이라고 지시했으면 이미 목이 날라갔을 유방을 쿨(?)하게 살려준게 바로 항우다.

범증은 “반드시 이때 죽여야지 안그러면 다시는 죽일 기회가 없다”며 “만약 죽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유방의 포로가 될 것”이라 항우에게 거듭 또 거듭 말하지만 당시 유방을 살려준 번쾌, 항백 등등 그리고 유방이 너무 비참하게 자신에게 기어들어와 화가 그만 풀려 그를 살려주게 되었다.

이는 항우가 유방을 죽일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8. 범증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

말로만 아부(아버지 다음가는 존재)라고 했지 범증의 의견을 용케 듣기만 했으면 유방은 이미 제거해버리고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함께 늙어서 죽을때까지 행복하게 살다 갔을 것이다.

범증이라함은 한신+소하+장량이 하는 활약을 초나라에서 도맡아서 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였고 삼국지로 비교하자면 촉의 제갈량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범증은 제갈량과는 다르게 주군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고 적의 반간계에 속아 내쫓겨나는 비운의 운명을 맡게 된다.
범증이 항우에게 했던 대표적인 충고가 세 가지가 있는데

1. 한신을 등용해라. 등용 안하면 죽이던지. 안그럼 후회한다.

2. 홍문연에서 유방 제거해라. 제거 안하면 후회한다. 우린 유방의 포로가 될 것이다.

3. 날 의심하지 마라. 너와 나 사이를 이간질 하는 반간계이니 날 믿어라.

하지만 결국 항우는 이 세가지 충고를 쌩까고 안듣게 된다. 결국 항우는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말게 된다.

항우는 자신이 무력 먼치킨 이란 것을 알고 자신의 힘을 알았기에 자신의 판단과 결단력을 지나치게 믿었다.

오히려 그의 그런 자신만만함이 그의 목을 죄여들어왔고 그를 죽음의 길로 향하게 만들었다.

항우는 자신의 판단과 결단이 오히려 민심을 잃어가게 만들고 자신의 세력을 잃어가게 되는걸 몰랐다.

그는 자신의 고향과 애처인 우희만을 사랑했을 뿐, 무력의 신 인것 말고는 이러한 실수 8가지 때문에 평가가 좋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