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가장 잘 싸운 부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2위인 육군 제 1사단 – 전진부대 (백선엽 장군의 자휘로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전 등)
3위인 해병대 (진동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 서울 수복작전, 도솔산 전투 등)
4위인 3사단 – 백골부대 (38선 첫 돌파, 원산 최초 입성 등)
5위인 수도기계화사단 – 맹호부대 (원산 최초 입성 등)이 있다.
그렇다면 1위인 청성부대는 어떤 전공을 세웠을까.

먼저 6사단은 청성 영광의 10대 자랑이라는 부대자랑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1. 창군 이전에 창설된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부대
2. 유일하게 38선 방어에 성공한 부대
3. 최초로 적 전차를 육단공격으로 파괴한 부대
4. 최초로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은 부대
5. 국군과 UN군 중 가장 먼저 압록강까지 진격한 부대
6. 중공군 3개 사단을 괴멸시킨 사주방어 신화창조 부대
7. 6.25전쟁 최다 전투, 최다 적 사살의 전공을 세운 부대
8. 제2땅굴을 발견한 부대
9. 철원축선을 방어하며, 적 침투를 한 번도 허용하지 않은 부대
10. 늘 푸른 병영운동으로 새로운 군대문화를 선도하는 부대이다.

먼저
1. 창군 이전에 창설된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부대
6사단은 1948년 4월 29일. 제 4여단으로 창설되었는데, 이는 대한민국 육군이 정식으로 발족한 1948년 9월 5일보다 이전에 창설된 것으로, 이후 6여단으로 개칭되었다가 1949년 1월 15일 제6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보병연대 기준으로 창설 당시의 편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단이다.
2. 유일하게 38선 방어에 성공한 부대
6.25 전쟁 초기 북한군이 기습남침한 개전초기 6사단은 유일하게 38선 라인에서 북한군에게 밀리지 않고 38선라인(그 당시 춘천)을 지켜낸 사단이다. (이게 바로 춘천-홍천 전투)
당시 북한은
서부전선 : 의정부 점령 – 서울 진격 – 서울 점령
동부전선 : 주문진 상륙, 춘천 점령 – 홍천 점령 – 수원 점령 – 국국 퇴로 차단 이라는 계획을 세웠으나 6사단이 이를 저지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우리나라를 점령하려는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이 전투로 북한군 2사단은 춘천에서 약 3일간 남진을 지연당한다.
결과적으로 6사단이 춘천-홍천 전투에서 북한군의 진공을 막아냄으로써 한강방어선 구축과 UN군이 증원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었고,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벌었다.
3. 최초로 적 전차를 육단공격으로 파괴한 부대
춘천-홍천 전투 중 6사단은 춘천 옥산포에서 심일 소위와 부사관의 육탄공격으로 적 자주포 3문을 파괴하였고, 홍천 말고개에서는 조달진 일병을 비롯한 육탄 11용사가 육탄공격으로 적 전차 10대를 파괴한 공을 세웠다.
4. 최초로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은 부대
1950년 7월. 7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상대로 음성 무극리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는 도중. 7연대 2대대가 동락리국민학교에 모여있던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공격하여 섬멸시켰다.
이 일로 6사단은 국군 창설 최초로 연대 전 장병이 1계급씩 특진했으며, 대통령 부대표창 1호를 수여받았다.
5. 국군과 UN군 중 가장 먼저 압록강까지 진격한 부대
1950년 10월 26일. 7연대가 압록강변의 초산을 탈환. 전군 최초로 한만 국경선에 도달한 부대가 되었다.
이날 부대는 압록강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수했다.
6. 중공군 3개 사단을 괴멸시킨 사주방어 신화창조 부대
1951년 경기 양평군 용문산과 화천저수지, 가평군 화야산 일대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용문산 전투의 주인공이 6사단.
이 전투에서 6사단은 사살 확인만 17,000명 이상. 포로 2,000명 이라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만한 전과는 6.25전투를 통틀어 그 예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인 대승이다.
7. 6.25전쟁 최다 전투, 최다 적 사살의 전공을 세운 부대
6사단은 총 154회에 참가 92,669명의 적을 사살했다.
8. 제2땅굴을 발견한 부대
1973년 11월 20일. GOP경계 중이던 이기태 상병과 김효섭 일병은 미세한 진동과 원인 미상의 폭음을 듣고 상부에 보고했는데, 이후 지속적인 지하의 폭음이 보고되자 땅굴 탐지 전담반을 편성하여 시추작업을 벌인 끝에 1975년 3월 19일 북한이 기습작전을 수행할 목적으로 파놓은 남침용 군사통로인 제2땅굴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부비트랩에 의해 8명이 전사하는 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9. 철원축선을 방어하며, 적 침투를 한 번도 허용하지 않은 부대
1966년 철원 축선 담당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적 침투를 허용하지 않았다.
10. 늘 푸른 병영운동으로 새로운 군대문화를 선도하는 부대이다.
이외.
1. 영천 일대에서 영천을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던 북한군 2군단과 이에 맞선 국군 8사단 7사단 6사단이 벌인 전투에서 6사단은 신녕지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은 8월 30일부터 9월 4일까지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으나 6사단의 분전으로 오히려 큰 피해를 입고 대구 진출을 포기한다.
이후 6사단은 9월 반격을 가해 북한군 전차 8대를 파괴시키는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