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중 청나라 황제가 인조와 조선 백성들에게 보낸 편지

2017년 October 24일   admin_pok 에디터

역대 한반도 국가 왕사 최대의 굴욕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전쟁인 병자호란

온라인 상에서 당시 조선은 사대주의로 명나라를 섬기다가 자멸했다고 평가받는데, 당시 청태종 홍타이지는 7일 만에 한성에 다다르고 인조와 조선 백성들에게 각각 문서를 보냈다.

이 문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누락되어 있고, 병자록과 청나라 실록에만 실려있다.

먼저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보낸 문서.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강대국들에게 사대해놓고 우리에게만 까불었지? 어디 너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명나라가 도우러 오는지 안 오는지 보자”

 

다음은 조선 백성들에게 보낸 포고

요약하자면 “우린 너네 조선이 시비 걸어도 자비롭게 참고 친하게 지내려 했는데, 이게 다 인조와 조선 조정 때문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달아나거나 항전하지 말고 생업에나 종사해라”

 

이후 전개는 남한산성 공략에 어려움을 겪은 청군은 강화도를 공격했는데, 당시 방어를 맡은 김경징이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서 청군에게 강화도가 함락당한다.

소현세자와 왕족들은 남한 산성으로 압송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인조는 전의를 상실하여 항복 문서를 보낸다.

 

 

다음은 항복 문서.

조선판 서희라 불리는 최명길은 인조의 굴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곤룡포를 입을 것을 허락해줄 것과 삼배구궤두 대신에 남한산성에서 태종을 향해 절을 하는 것 정도로 의식을 대신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용골대는 죄인인 인조가 정문인 남문으로 나오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인조의 항복문서를 받은 청태종의 답변.

이같은 청태종의 답변을 받은 인조는 성문을 열고 왕세자와 함께 삼전도에 설치한 수항단에서 청태종에게 갓에 철릭 차림으로 삼궤구고두의 항복 의식을 치른다.

이게바로 삼전도의 굴욕..

그리고 청나라와 강화 조약을 체결한 내용 요약

1. 명 황제가 수여한 고명, 책인을 바칠 것.
2. 명과의 국교를 끊고 청과 군신 관계를 맺을 것.
3. 명의 연호 대신 청의 연호를 쓸 것.
4. 세자, 왕자 및 대시의 자제를 청의 수도(심양)에 인질로 보낼 것.
5. 청이 명과 가도를 공격할 때 원병을 보낼 것.
6. 정기적으로 조선은 청에 사신을 파견할 것.
7. 조선의 인질이 조선으로 도망할 경우 무조건 심양으로 송환할 것.
8. 양국 신하 자제들과의 통혼을 장려, 우의를 다질 것.
9.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말 것.
10. 조선은 매년 예물을 청에 세폐로 보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