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를 통제하려했던 미국의 흑역사 금주법이 불러온 결과

  						  
 								 

미국의 흑역사 중 한 시기를 장식하는 금주법 시대(Prohibition Era), 그 중에서 특히 미합중국 수정헌법 제18조 (Eighteenth Amendment, Amendment XVIII) 가 적용되었던 1920년에서 1933년에 이르는 이 시기는 알 카포네와 같은 걸출한 범죄자를 낳았고, 법에 의한 사회 구성원의 욕구의 통제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았다.

금주법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위 사진의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

1881년 최초로 주헌법 상 알콜음료가 금지된 캔사스 주에서 활동했던 금주주의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던 캐리 네이션은 무려 한 손에는 도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나는 기꺼이 미국 시민의 타락을 막기 위해 예수의 불독이 되겠다” 고 자처하며 뜻이 맞는 페미니스트들을 모아 “캐리 네이션 금주법 그룹” 을 조직하여 활동했고, 무려 30군데의 술집에 들어가 도끼로 술통을 찍어 부수고 술집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키가 180cm에 몸무게가 80kg인 거구로 당시에 압도적인 피지컬을 지닌 인물이었다.

당시 미국의 사회 분위기도 점점 자유로워지는 시민 의식에 약간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를 음주, 흡연 성적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페미니스트, 기독교 근본주의자, 정치가들이 도원결의 하듯 뜻이 맞았던 몇 안되는 희귀한 상황이었던지라 1917년 8월1일 전설의 볼스티드 법 (Volstead Act)이 제출되고 1919년에 상원을 통과한다.

당연히 이 결정에 당시 미국 여성 단체는 모두 찬성을 외쳤고 덤으로 이 당시에 여성 참정권도 획득했다.

당시 금주법은 알콜 도수 0.5% 이상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명백히 당시 대중적으로 마시던 맥주를 노린 것이었고, 사실 1차 대전으로 인해 독일에 대한 악감정도 고양되어 있었던 탓에 “맥주는 독일 놈들이 좋아하니 독일 이민자 놈들 어디 당해봐라” 같은 독일 이민자의 적응을 견제하는 효과도 존재했다.

문제는 미국인들이 금욕주의자로 구성된 사람들이 아닌, 오히려 온갖 욕망을 내포한 인간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지 마라” 라고 하니 순순히 말을 들을리 만무했다.

처음에는 지지하던 사람들도 당장 자기 식탁에 올라오던 반주가 사라질 판이 되니 당연히 반대하고 나섰다.

곧 미국 사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술 숨기는 스커트, 술 숨기는 바지가 암암리에 판매되는가 하면

이전까지는 끽해야 도박장 개설이나 부자들 돈이나 뜯던 이탈리아 계 마피아 들이 밀주를 제조하는 것이 위험을 감수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술 사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아이콘이 바로 알 카포네.

“친절한 말과 함께 총을 겨누면 친절한 말만 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만든 술을 밀주라고 부르던 인간들이, 그걸 고급 저택에서 은쟁반에 담아 내놓으면 접대라고 부르며 기뻐한다.”

“타인이 땀 흘려 일해 번 돈을 똥 닦을 휴지로도 못쓸 주식으로 바꿔놓는 악덕은행가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불쌍한 범죄자들보다 더욱 감옥에 가야 마땅할 존재들이다.”

“나는 모든 불한당 들에게 정직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돈이 목적인 이상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정직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을 주었을 뿐인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험담뿐이다.”

“내가 이 사업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정치가들처럼 비싼 옷을 입고 개소리를 하는 악당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마피아가 밀주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식품 안전이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무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익기 전 토마토를 이용해 위스키를 만드는가 하면, 메틸 알콜을 섞어서 술을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재료로 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도 이에 단호히 대응하며 밀주가 발견되면 엄격하게 단속하고 술을 모두 폐기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미국은 금주법으로 인해 100억 달러 이상의 주세를 포기한 셈이고, 이 잠재적인 수입을 마피아 들에게 넘겨준 셈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이 거대한 이권을 둘러싸고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곳곳에서는 시카고 타자기가 신나게 울려퍼졌다.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또 한 조직이 쓰러지면 다른 조직이 몰려와 이권을 주워 먹으려는 혼돈, 파괴, 망각의 시절이 이어졌다.

마피아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밀주 단속원들과 정치가들을 하나하나 매수해 나갔고 알 카포네가 정치가들에게 “야 너희 중에 내 돈 안 받은 놈들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라는 어디서 들은 듯한 말을 시전하는 패기를 보여주던 시대였다.

당연히 워싱턴 DC 등 곳곳에서 금주법 반대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금주법이 통과되자 자기들도 금주법을 시행하는 주제에 나이롱 법안을 가지고 있던 캐나다인들이 “미국 너희들은 이런거 못 먹지?” 하고 공개 능욕을 시전하는 시절이 이어졌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는 80년대 말에 들어왔다가 폭망한 7UP도 1929년 당시 금주법의 반사이익을 노리고 도수 0.5% 미만의 탄산수를 가장하여 만들어졌다.

이 상황에 대해 당시 금주법에 찬성했던 존 록펠러 2세는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금주법이 제정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대중의 의견에 의해 폭넓은 지지를 얻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네.

그리고 술의 흉악한 영향이 인정받을 날이 곧 오리라고 믿었다네.

하지만 이게 내가 바란 결과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어.

음주는 오히려 증가하고, 불법 주점과 살롱이 번성하고, 범죄자는 이제 거대한 집단이 되어버렸다네.

우리의 가장 우수한 시민들조차 이제는 금주법을 무시하고 있네.

준법 정신은 이제 먼지처럼 가벼워지고 범죄는 한 때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네.”

록펠러 2세의 말대로 곳곳에서는 Speakeasy, 즉 무허가 주점들이 난립하고 비밀 주점에서 성매매와 더불어 스윙과 재즈가 유행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밀주 운송에 사용했던, 토목 자재 운반용으로 위장한 트럭.

하딩을 필두로 한 당시 공화당 수뇌부도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했지만 본인들이 만들고 밀어준 법안이라 끙끙앓고 있었는데, 마침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가 “나를 밀어주면 금주법을 날려버리겠다” 하고 공약을 내세우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꼭 술 마시고 싶어서 루즈벨트 를 뽑은 건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었고, 같은 해 12월 알래스카가 마지막으로 수정헌법 18조 폐기를 동의함에 따라 길고긴 13년의 암흑기가 막을 내리게 된다.

다시 미국인들의 테이블에 술이 돌아왔지만, 금주법의 상흔은 의외로 컸다.

이 당시의 의도만은 좋았던 것으로 평가된 뻘짓으로 인해 마피아가 세력을 크게 펼치는 원인이 되었고, 이후 미국은 술이 아니라 헤로인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로 변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