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아내를 위해 고양이를 그린 화가의 그림체가 갈수록 기괴해진 이유

2017년 November 6일   admin_pok 에디터

19세기 영국.

고양이를 좋아하는 어느 화가가 있었다.

루이스 웨인

최초로 의인화 고양이를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은 1860년 1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격은 온화하고 내성적이었으며 어릴때 부터 미술과 음악쪽으로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예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본래 꿈이었던 음악가를 접고 화가가 되기로 한다.

루이스가 23살이 되던 해.

여동생들의 가정교사인 10살 연상의 에밀리와 결혼한다.

그러나 둘은 행복할 새 없이 에밀리는 유방암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부부는 어느 비오는 밤 울고있는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게되고 루이스는 그 고양이를 거둬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에밀리는 투병 기단동안 피터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마음의 기운을 되찾았다.

루이스는 그런 피터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에밀리는 루이스가 그려준 피터의 그림을 보며 매우 즐거워 했다.

그러던 중 아내는 루이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는데

이 그림들을 잡지와 신문사에 보내면 어떨까?

자신도 루이스가 그린 피터의 모습을 보고 위로와 기쁨을 느낀것 처럼 많은 사람들이 루이스가 그린 고양이들을 보고 안식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아쉽게도 아내 에밀리는 루이스의 그림이 출판되기 전 죽었다.

하지만 아내의 바람대로 루이스는 잡지와 신문을 통해 유명세를 얻게 되었고 그의 그림들은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고양이 그림들은 엽서로도, 동화책의 삽화로도, 인쇄물, 기념일 카드등으로 사용되어 세계적인 고양이 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평소 루이스는 피터에게 안경을 씌어 준다던가, 사람처럼 행동하게 하는것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그림에게도 적용하게 된다.

그가 묘사하는 고양이는 점점 서서 걷기 시작하고 과장된 표정 변화도 지으며, 투박하고 현대적인 옷을 입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고양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차를 내오고, 담배를 피우며 카드놀이까지 즐기는 모습을 그려낸다.

고양이를, 동물을 의인화 해서 그림을 그렸던 것은 당시 전례에 없던 일로 굉장히 획기적인 시도였다.

당시 19세기 까지만 해도 흑사병의 원인이 쥐라고 생각했던 영국은 집집마다 고양이 한 마리씩은 모두 키우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흑사병을 막아주는 일종의 부적같은 의미로도 인기가 많았다.

루이스는 1898년에서 1911년 까지 국제 고양이 클럽의 위원회 총장을 역임 해왔고 고양이 보호 협회, 동물 생체 해부 반대 협회 등 동물 자선 단체에서 활동했다.

루이스 웨인은 한 해에 600점이 넘는 고양이 그림들을 그려냈고 그가 그린 약 1000점이 넘는 엽서들은 미국과 영국 뿐 만 아니라 전 세계로 수백만 세트가 만들어져 팔려 나갔다.

여기 까지의 이야기만 들으면 루이스 웨인이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진 것 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오로지 고양이밖에 몰랐고 그것은 오히려 루이스에게 독이 되었다.

루이스 웨인은 저작권이나 작품료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덕분에 그의 그림은 무단으로 도용되거나 복제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스무살때 부터 어머니와 다섯 동생을 먹여 살려야 했고 동생들은 루이스를 의지하기만 한 채 결혼도 하지 않은채 살았다.

그리고 전 재산을 털어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했지만 엄청난 실패로 빚을 떠얹게 된다.

다시 그림을 그려 팔으려 해도 무단 복제, 도용된 그림들 덕분에 그의 그림은 헐값에 팔리기 일쑤였고 오히려 빚쟁이들에게 쫒기는 상황까지 오게 되버린다.

그 후 부터 루이스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생기발랄하고 행복해 보이던 고양이들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고 점점 망가지고 기괴해지며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루이스 웨인의 인생과 그의 작업에 큰 전환점이 찾아온다.

그에게 찾아온 것은

조현증

정신 분열증은 망상과 환청등의 증상으로 사회적 생활을 하기에 장애가 되며 환자들의 예후 또한 좋지 않았다.

정신분열에 시달리면서도 그림, 고양이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루이스 웨인.

이 시기에 그가 그린 그림들에는 고양이의 모습들이 점점 기호처럼, 또는 패턴화 되기도 하였고 배경은 단순화 되거나 일정한 규칙을 가진 무늬들로 표현되곤 한다.

후기 작업들은 프렉탈을 이루며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말년에 가까워 질수록 고양이의 형상이 더욱 더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리게 된다.

현재 루이스 웨인이 그린 일련의 그림은 일반적으로 심리학 교과서에서 그의 심리 상태가 악화되면서 작풍도 변화한다고 추정하여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된다.

그러나, 루이스 웨인은 작품들에 날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서에 보여지는 순서대로 그림이 그려졌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른 이들은 루이스 웨인의 그림은 단순히 그의 어머니가 만든 직물의 무늬를 상기시키는 것 뿐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냅스버리 병원에서 삶을 마감했고 죽기 직전까지 고양이들을 계속 그렸으며 사망 이후에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 같이 묻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