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민간인 우주비행사를 태운 프로젝트가 대참사가 되버린 이유

  						  
 								 

예나 지금이나 우주를 탐험한다는 건 우리같은 민간인들에겐 꿈같은 일이다.

그런데 1985년 나사(NASA)가 우주인 선발 응모라는 이벤트를 마련하면서 이 꿈같은 일이 실현될 뻔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사는 이것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종종 민간인들을 우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최초의 도전이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꿈에 부풀어 상공으로 날아가던 우주 왕복선 챌린저 호(Challenger)가 채 우주에 가보지도 못하고 폭발해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6년 1월 28일 아침.

플로리다 주 케네디 우주센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우주 왕복선 챌린저 호의 비행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최초의 민간인 우주 비행사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들의 주인공은 36세의 여교사였던 크리스타 맥컬리프(Christa McAuliffe)였다.

미국 뉴햄프셔 콩코드 고등학교의 과학 교사였던 크리스타는 1985년, 나사의 야심찬 빅 이벤트였던 우주인 선발 응모에 참가했다.

사람들에게 교사의 중요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더불어 과학 공부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현장 학습을 제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 그녀는 응모에 망설이지 않았다.


▲크리스타 맥컬리프

당시 이 이벤트는 나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20년 간의 대대적인 예산 삭감과 대중들의 관심 감소 덕분에 정기적인 우주 왕복선 비행을 보장받을 수 없던 나사는 이번 비행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줄 전환점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나사가 가지고 있던 우주 왕복선 4대 중 챌린저 호는 처녀비행 이후 3년 6개월 동안 왕복선 임무의 40%를 맡았고 비행사 51명을 9차례에 걸쳐 무사히 우주로 보낸 경력을 자랑하는 꽤나 믿음직한 비행선이었다.

이날의 탑승자는 조종사 마이클 존 스미스(Michael J. Smith)와 임무 전문가 로널드 맥네어(Ronald McNair), 앨리슨 오니주카(Ellison Onizuka), 주디스 레즈닉(Judith Resnik), 인공위성 전문가 그레고리 자비스(Gregory Jarvis), 선장 딕 스코비(Francis Richard Scobee), 마지막으로 교사 크리스타 이렇게 총 7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비행 임무는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악천후로 1주일 넘게 발사가 지연되었고 발사 당일엔 때 아닌 추위에 7.5cm 두께의 얼음이 발사대를 뒤덮었다.

나사로서도 이처럼 추운 날씨에 우주 왕복선을 발사해 보긴 처음이었다.

발사 관제소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얼음이 녹길 바라며 또 2시간을 연기했다.

한편 발사 30분전.

템파(Tampa)로 가는 길에 우주 센터 상공을 지나고 있던 이스턴 항공 677편은 갑자기 강한 제트기류를 만났다.

당시 677편의 기장은 아직 발사대에서 대기하고 있는 챌린저 호를 봤고 자신이 겪은 이 난기류가 발사 지원의 원인일거라 생각했다.

우주왕복선은 위 그럼처럼 주추진 엔진을 갖춘 본체 비행선과 이륙을 도울 액체 연료 외부 탱크, 그리고 좌우에 달린 고체 연료 로켓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체인 스페이스 셔틀은 아래 달린 연료 탱크로부터 연료를 공급받아 고체 연료 로켓과 함께 추진력을 내면서 하늘로 날아오르게 되는 것이다.

발사 9분 전인 11시 29분.

관제소는 챌린저 호의 추진 장치들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모든 기능은 정상이었고 문제될만한 사항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우주 센터로부터 발사 승인을 허락받은 챌린저 호는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나사가 실수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우주 왕복선은 무사히 우주로 향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 5, 4, 3, 2, 1, 발사!

25번째 우주 왕복선의 임무가 시작됐습니다! “

드디어 챌린저 호가 비행을 시작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민간인도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는 꿈이 실현되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 횡전 비행, 정상 확인

목표 비행경로에 진입합니다. “

챌린저 호는 시속 1600km의 빠른 속력으로 상승해 나갔다.

고도 10km를 넘어가는 순간 기체가 심하게 떨렸지만 딱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챌린저 호는 이제 맥스 큐(max-q)라는 고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맥스 큐는 최대 출력이 이루어지는 지점을 말하는데 여기선 공기력이 최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자칫 지나치게 가속하다간 선체에 무리가 올 위험이 있었다.

다행히 챌린저 호는 이 단계를 잘 넘겼고 무사히 대기 상층부에 진입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화염이 챌린저 호를 집어 삼켰고 우주 왕복선은 산산조각이 나며 폭발해버렸다.

교신이 끊어지고 관제소는 충격에 휩싸였다.

밑에서 이를 보고 있던 크리스타의 부모님은 당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곧 대책반이 투입되었고 사고 원인을 밝히던 중, 영상 기록으로부터 화염 속에서도 승무원 구역이 파괴되지 않았단 게 확인되었다.

그들은 서둘러 바다에 떨어진 그 잔해를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15km의 상공에서 떨어져 시속 320km의 속력으로 바다와 충돌했을 것임을 계산해 봤을때 비행사들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규모 수색 끝에 승무원 구역의 잔해를 발견했지만 역시 생존자는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잔해가 발견되면서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이 밝혀졌다.

챌린저 호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은 모두 비상용 산소 호흡기가 부착된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승무원 구역 잔해에서 이게 작동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헬멧 3개가 발견됐던 것이다.

이는 폭발을 겪고도 3명이 살아남았고 적어도 그들이 지구로 추락하는 2분 30초 동안은 살아 있었음을 뜻했다.

레이건 대통령(Ronald Reagan)의 추도식 후, 대통령 직속의 조사위원회는 본격적인 사고 원인 밝히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5개월의 조사 끝에 그들은 오른쪽 고체 연료 추진기에 이상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위에 보듯 고체 연료 추진기는 총 네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필드 조인트(Field Joint)라고 불리는 연결 부위 이음새에는 틈을 막기 위한 한 쌍의 압축 고무인 O ring이 들어있다.

일단 추진기가 점화되면 0.01초도 안되서 불길이 일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강력한 압력이 추진기의 강철 외피를 밀어내게 된다.

이때 O-ring은 순식간에 팽창하면서 이음새 사이의 틈을 막으며 연료가 새는 걸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사관들은 이 O-ring이 챌린저 호 폭발의 주원인이라 생각했다.

발사 당일의 추운 날씨가 오른쪽 추진기 최하단의 O-ring을 제대로 팽창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뜨거운 기체를 새게 만들면서 폭발을 초래했다고 보았다.

챌린저 호가 맥스 큐를 통과하던 그때 추진기와 외부 연료통을 잇는 지지대가 뜨거운 기체로 인해 불에 탔고 연결 장치가 완전히 부서지자 오른쪽 고체 연료 추진기는 멋대로 움직이며 액체연료 외부 탱크 상단을 들이받았다.

그 즉시 폭발이 일어났고 챌린저호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 그 와중에 참사의 원인은 이 뿐만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작가 겸 언론가였던 제임스 차일스(James Chiles)였다.

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부터 에어 프랑스의 콩코드 추락사고 등 세계적인 기술 재난의 진실을 갈구하며 살아 온 흔히 말하길 이쪽 분야의 준전문가였다.


▲제임스 차일스

당시 조사위원회가 제시했던 증거 자료는 발사 직후 오른쪽 추진기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찍힌 영상이었다.

그들은 이 연기가 O-ring 타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만일 O-ring이 불에 탔다면 왜 그 벌어진 틈새로 누출된 로켓연료가 발사단계에서 진작에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에 반박했고 이에 무언가 더 있을거라는 의혹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로저 보졸리(Roger Boisjoly)라는 사람이 조사위원회를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챌린저 호의 추진기를 제작한 타이오콜(Morton Thiokol)의 엔지니어였던 그는 나사와 타이오콜의 관계자들이 챌린저 호의 폭발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로저는 챌린저호 참사가 관계자들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벌어진 인재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1년 전인 1985년 1월.

마찬가지로 추운 아침에 발사된 디스커버리 호(Discovery)의 추진기를 회수했던 그는 O-ring 주변에서 다량의 그을음과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추진기의 O-ring은 1mm도 안 남기고 거의 다 탄 상태였는데 추진기 분리까지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더라면 디스커버리 호는 챌린저 호와 마찬가지로 폭발했을 수도 있었다.

추위가 O-ring의 팽창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로저는 사고 하루 전날, 챌린저 호의 발사 계획을 중단시키려 했다.

로저의 이야기를 들은 타이오콜의 부장들은 이내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발사 계획 중단은 그들의 소관이 아니었다.


▲O-ring을 들고 있는 로저 보졸리

타이오콜의 부장 넷은 급한 김에 나사의 셔틀 프로그램 매너저였던 로렌스 멀로이(Lawrence Mulloy)에게 전화를 걸었고 추위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발사 계획의 연기를 권고했다.

하지만 나사 측의 멀로이는 4월에나 발사하길 원하냐며 따져댔고 하필 왜 발사 전날 밤에 이런 얘길 하냐며 되려 열을 올렸다.

로저는 다시 한번 디스커버리 호의 타버린 O-ring 사진을 보여주며 즉시 발사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멀로이의 윽박지름에 마음을 바꾼 부장들은

“이제는 공학자의 모자를 벗고 경영자의 모자를 쓸 때”

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결국 의견을 번복했다.

줏대없는 부장들의 태도에 로저는 미칠듯이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다음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챌린저 호 참사는 기정 사실이 되었다.


▲번복된 타이오콜의 발사 권유 문서

한편 로저의 증언이 있은 후 제임스 차일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연기가 발생한 지 정확히 2.6초 후 분출을 멈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 연기가 멈춘 원인은 알루미늄 슬래그(Slag) 때문이었다.

1950년대 고체 로켓 연료는 알루미늄을 첨가하기 시작하면서 혁신을 이루었는데 이 알루미늄은 소성 온도를 높이고 추진력을 약 50%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알루미늄이 첨가된 연료는 금속 찌꺼기를 남기곤 했는데, 그것이 바로 슬래그이다.

로저가 우려한 것처럼 O-ring이 타면서 이음새에 틈이 생겼지만 발사대에서 폭발하지 않았던건 그 사이를 대신 메꿔준 이 슬래그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챌린저 호는 비행 73초 후 폭발했다.

슬래그가 벌어진 틈새를 대신 막아줬다면서 챌린저호는 왜 폭발했던 걸까?

챌린저 호 폭발 직전의 사진을 보자.

추진기 강철 외피가 뚫려있고 연료가 거기로 세면서 불을 뿜고 있다.

위 사진 오른쪽 추진기 측면의 불꽃 보이는가?

조사관들은 이를 포착하고 우주선 전체에 설치되어 있던 200개 이상의 송신기 기록을 확인했다.

이 송신기들은 실시간으로 원격 측정값이라는 정보를 관제소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기록들을 분석하면 당시 우주선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기록 확인 결과, 발사 후 60초가 경과했을 때 갑자기 추진기의 압력이 감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압력 손실은 곧 구멍이 생기고 연료가 누출되었다는 의미인데 어떤 요인에 의해 슬래그들이 제거되었고 추진기 내 뜨거운 공기가 강철 외피를 그 구멍을 만든 것이었다.


▲챌린저호가 분출한 배기가스 모양

슬래그가 제거된 원인을 밝히고자 했던 제임스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챌린저 호의 배기가스 모양이었다.

챌린저 호가 뿜어낸 배기가스는 지그재그의 연기 기둥을 이루었는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의 연기 기둥은 기존의 것들과 달리 수직 형태였다.

이는 강한 옆바람을 맞았다는 증거였다.

발사 30분전 근처 상공을 날던 비행기가 강한 제트기류를 만났다.

기장의 진술을 들은 제임스는 이 제트기류가 챌린저호의 측면을 강타하면서 슬래그를 제거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는 조사관들에게 물증없는 가설에 불과했고 그에겐 주장을 뒷받침해 줄 보다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했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원격 측정값 기록이 재검토되었다.

비행 시간대와 챌린저 호의 움직임을 비교해 본 결과, 비행 55.7초 후 챌린저 호가 갑자기 주엔진의 분사구 각도를 2도 변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행선 분사구 각도 변경은 어떤 외부 요인에 의해 기체가 흔들릴때 궤도 유지를 위해 나타나는 비행선의 자동 반응이다.

마치 운전시 핸들이 갑자기 돌아가면 반대로 돌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로써 제임스의 가설이 입증되었다.

챌린저 호를 측면에서 강타했던 건 이스턴 항공 677편이 만났던 바로 그 제트기류였다.

이 강력한 돌풍이 추진기 이음새 사이의 슬래그들을 제거하면서 2700도가 넘는 뜨거운 배기가스가 그대로 로켓의 강철 외피에 구멍을 만들었고 연료가 세면서 불이 붙었다.

화염은 고체 연료 로켓과 외부 연료통 사이의 연결 장치를 망가뜨렸다.

덕분에 로켓은 통제에서 벗어나 혼자 솟구치다 연료 탱크 상단을 강타했고 챌린저 호는 그렇게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조사위원회는 충분히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섣부른 비행 결정을 내린 나사와 타이오콜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사고 몇 달 후 타이오콜은 유가족들에게 43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1억원)를 배상금으로 지불했지만 곧 18억 달러에 달하는 나사의 신형 추진기 개발 계약을 따냈고, 챌린저 호 발사계획을 강행했던 나사의 멀로이는 되려 신규 추진기 총괄팀 부책임자로 승진했다.

반면 로저는 증언을 했단 이유로 타이오콜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았고 때문에 회사를 나와야 했다.

1986년 참사가 일어났던 그날.

그 빌어먹을 제트기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추진기가 본체에서 분리될 때까지 슬래그들이 제거되는 일은 없었을거고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알루미늄 슬래그들이 63초만 더 버텼어도 크리스타는 살아서 가족들 품에 돌아올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챌린저 호 폭발 후 찍힌 크리스타의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