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하다 주운 돌로 고고학설을 완전히 뒤엎은 주한 미군

  						  
 								 

이 유적지를 발견한 그렉 보웬. (감사한 분)

1977년 그렉 보웬 이라는 주한미군 공군 상병이 동두천 군부대의 여가수인 한국인 애인과 1월에 한탄강으로 데이트하러 나가서 여친과 커피를 마시려고 코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에서 돌을 모은다.

그 때 여친이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보웬은 일반 돌과는 다른 심상치 않은 돌이라 여겨 서울대 교수에 조사를 요청했는데..

그 돌이 무려 약 3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 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전곡리 일대에서 4500여점의 유물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발견은 당시 고고학계를 완전히 뒤엎은 대사건이었다.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형 뗀석기가 발견되지 않아 대표적으로 모비우스 같은 학자들의 구석기 문화 이원론인 모비우스 학설에 주장되고 있었다.

이는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상의 선으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발견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어, 인류의 이동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는 이론으로 한동안은 인도 동부에서부터 이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인류의 동아시아 진출이 유럽보다 늦게 이뤄지지 않았나 추정했었다.

그러나.

전기 구석기의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아슐리안 석기 발견으로 그동안 정설로 인정받았던 모비우스 학설이 한순간에 부정되어 버린것이다.

이 일은 세계를 놀라게 함은 물론이고, 데즈먼드 클라크 같은 저명한 세계적인 학자들까지 한국에와서 석기들을 감정하고 진품임을 인정하였다.

특히 옛날부터 한국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일본은 이사건으로 열폭해 버리고 희대의 주작질을 하다가 개망신을 당한다.


▲후지무라 신이치의 신의 손 사건


▲아슐리안형 석기보다 이전의 원시적인 석기 올도완

이 올도완석기는 아프리카에서 260만 년 전부터 발견된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부터 호모 에렉투스가 약 190만년 전쯤 아프리카를 나와 아시아로 진출했는데 이때 조악한 올도완 석기기술을 가지고 나온것이다.

그 이후 160만년 전쯤 아프리카에 남아 있떤 고인류가 보다 발전된 방식의 석기를 만드는데 이를 아슐리안형 석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 및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 유적에서는 당연히 올도완 석기만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모비우스 라인 이론을 증명하는 증거로 오랫동안 학자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석기와 상당히 닮은 손도끼가 발견되면서 학계의 논란이 된 것.

이 유적이 30만년 전의 것이라면 새로운 호모 에렉투스가 아슐리안 석기 기술을 갖고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의 끝까지 왔다는 얘기이거나, 최소한 아슐리안 기술이 그 먼 거리의 고인류사이에 전파되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나간 자리에 다른 이슐리안 석기 유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곡리 유적 발견 당시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그런 증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설이 나오고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렉 보웬과 오른쪽 그레 보웬의 와이프인 상미 보웬(이상미)

이 분이 아니었으면 전곡리는 그대로 묻혀져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운이 좋게도 보웬은 마침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군대에 오게 된것도 학비를 벌기 위해서 입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웬에게도 이 유적지 발견은 크나큰 명예였으며 이 공로로 해외 고고학계로 부터 알려져 이후 제대해서 석사학위까지 따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연천 구석기 축제에 초청받아 방한하기도 했으며, 200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