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중성이 불러온 결말 중세 유럽의 성문화

2017년 November 9일   admin_pok 에디터

중세 유럽은 기본적으로

“육체적 쾌락은 악마가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타락과 대죄의 산물이다”

라는 교회의 입장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였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매춘은 금지되어 있었다.

로마때는 그렇지 않았다며 일부가 반대 시위를 해보기도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 족이 로마 제국에 산재한 각종 집창촌과 목욕 시설을 모두 파괴해버린 후, 교회가 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민중들에게 금욕을 강조하고 신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고수하는데 이용했다.

그래서 중세 초기에는 조직적인 직업 여성이 형성되지는 못했고 상품의 교역로나 성지 순례자들의 무리에 끼어들어 몸을 파는 생계형 매춘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금욕을 시켜놨더니 매춘이 나타났다하면 그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8세기 잉글랜드에서는

“많은 여성들과 수녀들이 순례 여행의 허가를 얻어 출발하였으나 그들 중 순결한 몸으로 돌아오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롬바르디아와 갈리아 지방에 이르면 매춘을 하지 않는 이들을 보기 드물었다”

라고 할 정도였다.

그 다음으로 눈을 돌린 것이 바로 노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성을 탄압했던 시기에 여성 노예제 근절이 이루어질뻔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보통 교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이교도에 의해서 노예의 거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회는 주된 거래처인 유대인, 아랍인 들을 철저하게 박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도시가 점점 들어서면서 각지에 흩어져 순례자 행렬 등에 끼어 힘들게 영업하던 중세 유럽의 직업 여성들은 점차 변모하기 시작했다.

순례 행렬 등에서 괴로움을 동반하며 몸을 파는 것보다 금융, 물류가 집중되는 도시에 정착하여 몸을 파는 것이 더욱 유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11세기 이후부터는 그동안 용병이나 군대를 따라다니던 직업 여성들이 이제 상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도시에서 정착하여 장사를 하는 쪽이 수입면이나 접근성에 있어 월등하게 나았고, 예전에 비해 더욱 큰 돈을 쥘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주목한 상인들은 이 막대한 비지니스에 과세를 한다면 훌륭한 수입원이 될 것에 착안하고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공창 지역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편 교회 측도 이 쏠쏠한 사업에 눈을 돌려서, 기본적으로는 “매춘은 악마의 소행이다” 라고 비난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집창촌의 토지를 임대하여 주고 상인과 이권 다툼을 벌이는 짓을 자행했다.

영국의 헨리 2세는 아예 직업 여성들에 대해 몇 가지 간단한 조례를 지정해주었다.

이를테면

“창녀에게 매춘가에 살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

“만일 창녀가 부득이 매춘가에 살기를 원할 때에도 주 14 펜스 이상을 받아서는 안된다.”

“여성이 매춘을 그만두고 싶어할 때는 포주는 이를 막아서는 안된다.”

“명백하게 임신한 여성, 수녀 등을 고용해서는 안된다.”

“공휴일에 영업을 하는 경우 교구에서 추방한다.”

“매춘부는 하룻밤을 함께 하지 않으면 결코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

“어떤 창녀도 6실링 8펜스 이상을 받아서는 안된다.”

등이 있었다.

교회가 겉으로는 아닌척했지만 뒤로는 도시의 상인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집창촌에서 나오는 수익금에 눈이 뒤집혀 있는 사이, 기본적인 피임법, 속옷 등이 점차 발전하고 집창촌의 치안도 자체적으로 유지되어 갔다.

한 편, 직업적인 매춘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매력을 증명하기 위해” 남성들에게 몸을 파는 이른바 세미 프로들이 존재했는데, 이런 여성들은 직업 여성의 규율에 매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를 골라가며 데리고 놀았다.

그러다보면 꼭 선택받지 못하는 남자들이 생기다보니 질투에 눈이 돌아간 이들이

“저 여자는 마녀다”

라고 교회에 고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의 성직자들도 신을 섬기는 몸이라 안 그래도 성매매를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마녀다” 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처형이다!” 하고 신이 나서 온갖 심문을 가장한 성고문을 자행하며 즐기는 것이 변변치 않은 성직자들의 오락거리였다.

여성의 생식기를 찢고, 자궁을 파열 시키고, 불로 지지기, 삼각 목마 등등 인간의 가학성을 충족시키는 온갖 고문 방법이 그 당시에 자행되었다.

한 편 프랑스의 루이9세는 이런 직업적인 매춘을 근절하고자

“매춘의 길로 들어선 것을 회개하고 바른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여성”

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보호소를 만들어주는 등 지금의 여성가족부같은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한 번 몸을 파는 게 편하다는 걸 알아버린 창녀들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왕이 만들어준 보호소에 살면서 오히려 남자들을 불러들여 영업을 하다가 성병을 옮기는 등 루이9세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행동을 일삼았다.

결국 화가 난 루이9세는

“단속되었는데도 매춘을 계속하는 여성들은 추방하고 재산을 몰수하라”

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