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지만 존재했던 전쟁 속 성욕, 2차 대전의 비하인드 스토리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들, 전쟁의 가장 은밀한 이야기.

2차 세계대전 전쟁야사에 대해 알아보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미군들은 1945년 8월까지 끔찍한 전장으로 내몰려야 했다.

알다시피 전쟁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결정나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군인들에게 권태와 두려움은 또 다른 적이었지만 이를 떨쳐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중 가장 유용했던 방법이 바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이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남녀 간의 성관계 외에 동성애도 극에 달했는데 유럽 전선에서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유럽으로 투입되었던 미군들은 대부분 1942년 봄과 여름에 영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미 3년 동안 나치와 싸우고 있었던 영국인들은 이를 보고 미군의 침공이라며 비아냥거렸다.

1942년 가을, 영국엔 25만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었고 그들은 외로운 영국 여성들을 달래주었다.

남편이 이미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았거나 남편에게서 2~3년간 연락이 끊긴 여성들이 아주 많았던 당시의 영국이라 평상시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의 불륜들이 일어났다.

기록에 의하면 미군과 결혼한 사례도 굉장히 많았는데 당시 7만여명의 영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던지 1940년에서 1945년 사이 영국에서 태어난 25만명의 신생아 중 10만 5천명이 사생아였다.

결혼과 사생아 출산 비율은 당시 많은 영국 여성과 미군들이 성관계를 가졌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미군의 급여는 상당히 짭짤했는데 당시 영국 여자들은 자신에게 기꺼이 돈을 쓰는 사람을 좋아했고 바로 미군이 그러했다.

게다가 많은 여성들은 “미군들이 잘 생겼고 예의가 바르다” 며 좋아했는데 뭐 이국의 남성과 사랑을 나눈다는게 신선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 런던은 심한 폭격에 시달린 탓에 도시 전체가 의기소침해 있었다.

침울했던 도시에 미군이 들어서자 영국 여성들은 환호했다.

달려드는 모양새를 보면 미군보다 영국 여성들이 더 심하게 이성에게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미군을 졸졸 따라 다니던 여자들은 굿타임 걸이라고 불렀는데 그녀들은 골목에 서선 일부러 지금 시간이 많다는걸 미군들에게 광고하곤 했다.

항상 여자들이 가득했던 피카딜리 광장에서 미군들은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추파를 던졌다.

개중에는 대담한 매춘부들도 있었는데 건물 현관에 서서 발목을 비치는게 특징이었다.

그녀들은 손님들을 재빨리 처리하곤 했는데 이에 미군은 그녀들에게 피카딜리 코만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런던의 윈드밀 극장(Windmill Theater)은 전쟁 중임에도 문을 닫지 않았고 미군들에게 영국행 필수코스로 여겨졌는데 그곳의 배우들이 누드상태로 연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런던 윈드밀 극장

■구체적인 사례들 

1943년 18세의 나이로 참전했던 미군 제 9보병사단 39연대 2대대 시드니 포먼(Sydney Foreman) 상병.

영국에서 처음으로 술집에 들른 날 포먼은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낸시.

키가 굉장히 크고 매력적이었다는데 포먼은 그녀와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다음주에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다.

마침내 영화를 보기로 한 날.

포먼은 낸시가 그저 영화만 보려고 온 게 아니란걸 깨닫고는 당황해한다.

그녀는 포먼 옆에 바짝 붙더니 그의 손을 끌어당겨 스웨터 속으로 가져갔는데 이때 포먼은 그녀가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걸 알게 된다.

포먼은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몰랐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이성과의 만남은 마냥 즐거웠고 다음에 만날 날을 고대하게 된다.


▲시드니 포먼

다음번 만남은 일요일 오후였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외딴 곳으로 향한다.

낸시는 커다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으슥한 곳에 도착하자 그걸 걷어올렸고 포먼은 생각할 틈도 없이 거사를 치르게 된다.

이후 포먼은 약 1년간 영국에 머무르며 정기적으로 낸시를 만났지만 대부분의 미군들이 그러했듯 다른 여성들도 곧잘 만나곤 했다.

런던에 간 포먼은 함께 얘기를 나눴던 아가씨를 배웅하다 당시 영국에서 은밀한 장소를 찾는 연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던 기차역 아치 아래에 대해 알게 된다.

그가 말하길 같이 아치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을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야성적으로 돌변했다고.

포먼이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 아가씨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고 그렇게 포먼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당시 영국 여성들은 벽에 기대서 옷을 입을 채로 관계를 가지면 임신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걸 월 잡(Wall Job)이라고 불렀다.

시드니 포먼은 영국에 머무는 동안 연애 상대가 없어서 고민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었기에 자신이 만나던 여자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영국을 떠나야 했다.

포먼의 부대는 D-day 바로 전날 영국을 떠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배치되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비록 영국에서의 생활은 끝이 났지만 유럽에 있는 동안 로맨스는 계속되었다.

그 후로도 포먼은 유럽전역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많은 여성들을 만났는데 당시 유럽여자들은 죽기 전에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땠을까?

1943년 6월 6일 D-day 이후.

미군을 보고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낀 프랑스 여자들은 영국에서 그러했듯 그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1944년 9월 프랑스에 도착했던 미 육군 A774 탱크 대대 기갑 중대 중위 존 킹슬리(John K Kingsley)는 노르망디에서 한 프랑스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조시였는데 당시 그녀와 관계를 했던 존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랑? 섹스는 섹스일 뿐이야.

사랑은 얼어죽을.

난 그저 담배가 필요해”

이처럼 유럽전선에는 성관계를 대가로 미군들에게 무언갈 요구했던 여성들도 상당히 많았다.

다음은 첩보활동을 했던 2차 세계대전 여성 스파이 에이미 엘리자베스 터프(Amy Elizabeth Thorpe)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160cm의 키에 짙은 금발, 녹색의 큰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스파이로서 터프에겐 그녀만의 특별한 무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성관계였다.

어떤 남자든 걸려들기만 하면 그대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터프는 1910년 워싱턴 D.C의 저명한 해운법률가이자 전직 해병대 대령 출신이었던 명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열아홉이 되던 해 처음 워싱턴 사교계에 등장한다.


▲에이미 엘리자베스 터프

1929년 터프는 자신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던 38살의 영국 외교관 아서 팩(Arthur J. Pack)을 유혹했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성적으로 매우 활발했던 터프와 달리 그녀의 남편은 성욕이 강한 편이 아니었고 둘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1937년 아서 팩은 폴란드의 영국 대사관으로 파견되는데, 남편을 따라 폴란드에 온 터프는 얼마 안돼서 한 젊은 외교관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는 그 남자와 침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정보를 알아내게 된다.

그때 얻었던 정보는 체코슬로바이카 합병에 관한 것이었고 그녀는 곧장 그 내용을 영국 첩보부에 알렸다.

이 우연한 계기로 첩보부에 스카우트 된 터프는 본격적으로 스파이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발발 6개월 전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는 나치군들

그러던 어느날 영국 첩보부는 터프에게 한 사람을 유혹하라는 지령을 내리는데 그 사람은 폴란드 국방장관의 수행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 수행원으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았고 저녁 식사에도 초대되었다.

그는 이미 터프에게 흠뻑 빠져 든 뒤였다.

곧 그들은 같이 잠을 자게 되었고 그날밤 터프는 그의 서류가방에서 기밀서류를 빼낸다.

기밀서류는 폴란드가 독일의 일급 비밀인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영국 첩보부에 전달한 터프 덕분에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그 연구 성과를 넘겨받은 영국은 암호 해독에 성공하면서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41년 남편과 이혼한 터프는 미국으로 돌아왔고 그녀의 재능을 탐냈던 영국 첩보부는 신시아(Cynthia : 달의 여신)라는 암호명과 함께 새로운 임무를 내린다.

워싱턴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침투해 고급 외교관이었던 알베르토 레이(Alberto Lais) 제독을 유혹하라는 내용이었다.

터프의 10대 시절 외교석상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알베르토 레이인지라 둘은 구면이었다.

레이는 어린 여자를 좋아했기에 터프는 되도록 소녀같은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결국 이탈리아 제독을 유혹하는데 성공하자 영국 첩보부는 이탈리아 해군의 암호를 캐내오라고 지령을 내린다.

그녀는 자신만의 스킬에 꽤나 자신있었던 모양이었다.

놀랍게도 터프는 대놓고 레이에게 암호를 요구했는데 그 얘기가 나온 곳은 물론 침대였다.

충격받은 레이는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즉각적인 답을 피했다.

그러곤 다음날 직접 암호를 넘겨주는 것은 거절했지만 대신 암호담당가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한다.

이후 과정에 대한 기록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터프가 암호를 획득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남았다.

그 결과로 1941년 3월 28일 영국 해군은 마타판 해전(Battle Of Cape Matapan)에서 이탈리아 함대를 대파한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레이는 터프에게 또 다른 중요 정보를 알려주게 된다.

미국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모든 이탈리아 함대를 즉시 이동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영국 첩보부는 미국의 전략 항구에서 이탈리아 함선들이 대규모로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 제독이 이탈리아로 소환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터프는 또 다른 임무를 부여받는데 이번엔 프랑스 대사관에 침투하여 프랑스 해군 암호를 빼내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해군은 세계 4위의 전력을 자랑했지만 이미 내륙은 나치에 의해 점령당한 뒤였다.

홀로 남은 그들이 연합군과 나치 중 어느 쪽에 가담할 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연합군 측은 프랑스 해군을 쭉 주시했는데 북아프리카에서 전투가 벌어졌던 1942년엔 그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터프는 워싱턴 상류사회의 작가로 가장하고 대사관 출입 자격을 허가받았다.

이번 임무의 목표물은 프랑스 언론담당관이자 유부남이었던 찰스 브루스(Charles Brousse)였다.

만난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터프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침대 위에서 당당히 해군 암호를 요구했다.

브루스가 이유를 묻자 터프는 그저 프랑스 해군을 위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남자들을 잘 구슬렸던 그녀는 브루스의 남자다운 용기와 애국심을 자극했고 마침내 그의 신뢰를 얻게 된다.


▲왼쪽 남자가 찰스 브루스

결국 터프는 브루스를 연합군 측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암호는 넘겨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인 즉, 암호는 성경만한 책 두 권에 나뉘어져 담겨 있었는데 암호 담당관이 없으면 금고에서 꺼내 볼 수 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암호 책이 대사관 금고에 들어있으면 그걸 꺼내는건 거의 불가능 했다.

밤엔 경비원들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터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브루스와 상의한 그녀는 생각해 둔 계획으로 야간에 당당히 대사관으로 들어가 금고를 열기로 한다.

우선은 브루스를 대사관 경비원과 친해지게 만들었다.

브루스는 그녀가 시킨대로 경비원에게 부탁 한가지를 하는데 부인 몰래 미국인 여자친구와 밀회를 즐길 장소로 밤에 대사관 사무실을 빌려달란 것이었다.

브루스와 터프는 경비원을 확실하게 속이기 위해 암호를 빼내기 전 몇차례 대사관에 출입한다.

암호를 빼내기로 한 날.

철두철미했던 터프는 경비원이 완벽히 속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혹시를 위해 옷을 벗어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10분쯤 지나 경비원은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을 열었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터프를 보곤 놀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성공적으로 경비원을 따돌린 그녀는 창 밖에 기다리던 요원에게 그걸 건냈고 이번에도 그녀는 암호를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얼마 후 횃불(Operation Torch)이라는 작전명 아래 패튼(George Smith Patton Jr) 장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이 펼쳐진다.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중에서도 횃불 작전은 프랑스령이었던 알제리와 모로코를 겨냥한 점령작전이었다.

터프가 빼내 온 프랑스 해군 암호는 이 작전에서 굉장한 역할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터프는 브루스와 결혼했고 남을 여생을 프랑스에서 보낸다.

1963년 그녀가 후두함으로 세상을 뜨기 전.

다비드 브링클리(David Brinkley)라는 저널리스트는 그녀에게 과거가 부끄럽지 않냐는 질문을 한다.

여기에 터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전 어떤 남자든 제게 빠지게 만들 수 있었어요.

그들은 내 사랑의 대가로 정보를 준 것 뿐이예요.

부끄럽냐고요?

전혀요.

고상한 방법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어요.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