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의 병력으로 5천 명의 중국군에 맞선 인도판 300

2017년 November 14일   admin_pok 에디터

“아버지의 유골과 신의 사원을 지키기 위해 불가능한 확률에 맞서 싸우다 죽는 것보다 명예로운 죽음은 없다.”

전투에서 이길 수는 있으나 전쟁에서는 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신의 무기와 노련한 병력으로 무장한 군대도 정의로운 명분 없이 전장으로 향한다면 여전히 승리는 진정으로 평화와 화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54년 전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그리고 스리랑카가 중국의 세력 확장에 맞서고 있을 당시 인도는 중국과 국경 분쟁 중에 있었다.

당시 티베트 망명 정부가 인도에 들어와 있었고 당시 중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인도-중국 전쟁에 관해서는 이보다 더욱 끔찍한 사례들도 많지만 이번에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위티피드(Witty Feed)에서 소개된 사례야 말로 인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추슐(Chushul) 계곡: 용맹한 자들의 계곡

중-인 전쟁은 1962년 11월 18일에 발발했다. 당시 인도군들은 열정은 가득했지만 전술과 중국군의 전략에 관해서는 거의 까막눈이었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추슐 계곡은 13 쿠마온(Kumaon) 보병 연대 소속의 병사 120명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조국의 영토를 수호하고 정권을 보존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리적 불리함 

당시 부대는 주변 지형에 관해서 잘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적절한 후방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120명은 오로지 서로에게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후의 항전: 120명의 병력 중 6명만 남게 되다.

120명의 병력만으로 1300여 명의 중국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이들 부대의 병력도 6명까지 급감하게 되었다.

최후의 항전에서 샤이탄 싱(Shaitan Singh)소령이 이끌던 부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싸웠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은 6인의 병사들도 결국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이들은 얼마 안있어 탈출에 성공한다.

뒤늦은 지원 병력

3일 뒤 중국군은 갑자기 교전의 전면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적십자를 포함한 의료팀이 생존자를 구출하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도착했고 120 명의 시신은 모두 안전하게 수습되었다.

◆ 지원 병력의 활약

120 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원 병력으로 도착한 114 보병 연대는 중국군에게 반격을 가해 추슐 지역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샤이탄 싱(Shaitan Singh) 소령

싱 소령의 군사적 기량과 대대 병력의 협력으로 120명의 인도군은 5천에서 6천 명에 달하던 중국군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이후 샤이탄 싱 소령에게는 인도 최고 영예의 훈장인 파르마 비르 차크라(Parma Vir Chakra) 훈장이 수여되었으며 다른 희생자들에게도 각각 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13 쿠마온 보병 연대도 라다크 훈장을 받게 되었다.

◆  그 이후…

용감한 120인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에 공개되었으며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전투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전적지에 전적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