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이겼다는데, 한쪽은 지지 않았다는 전쟁


 						  
 								 

한쪽은 이겼다는데, 한쪽은 지지 않았다는 전쟁

미국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살라 버린 사건과 은근슬쩍 강제 개항 의도로 1871년 강화도를 침공한 ‘신미양요’당시.

미군 “조선 병사들은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세고, 호랑이처럼 잔인하며, 사격술은 윌리엄 텔만큼 백발백중이라는데…!”

이는 병인양요로 프랑스를 물리친 조선군을 보고 미군 사이에서 돌던 소문이다.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온갖 전투에 단련된 미군이지만 조선군의 소문을 듣고 특별히 해상 기동 훈련까지 실시.

미국의 최종 목적은 단 하나,

조선과 수교협상을 맺는 일.

하지만 조선은 병인양요 이후 쇄국 정책이 더 강화된 상태였다.

미군은 해상에선 함포로, 육상에선 야포로 동시에 공격했으며, 여러 요새를 초토화시켰고, 드디어 접근이 쉽지 않은 절벽 위 요새에서 수백 문의 대포로 무장한 천여 명의 정예 조선군을 마주한다.

“남북전쟁 때에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포화와 총알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 미군 블레이크 중령의 증언 中

하지만 선 자세로 재장전, 1분에 1발 쏘는 조선의 화승총과는 달리 엎드린 자세로도 1분에 10발 이상 쏠 수 있는 미국의 레밍턴 소총.

“조선 수비병은 소총에 재장전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요새로 올라오는 미군을 육탄으로 방어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복 같은 건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과 흙을 집어던졌다.”

– 미 해군 슬라이 소령의 회고록 中

“그들은 대단히 용감했고 두려움 없이 성벽 위로 상체를 노출시킨 채 사격을 가해왔다.”

– 미 해병대 대위 멕클레인 틸튼의 작전보고서 中

결과는 조선군 사망자 약 350명. 미군 사망자 3명.

하지만 전쟁결과에 대한 양측의 상반된 평가.

미국은 압승을 거두고 유리한 수교협상을 기대했으나, 조선에선 영토를 잃지 않았으니 패배가 아니라는 조선.

오히려 척화 전쟁의 승리를 선전하고, 척화비를 세운 흥선대원군. 더 나아가 대원군은 서원 철폐도 단행한다.

“승리는 승리였으나 누구 한 사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의미한 승리였다.”

– <뉴욕 헤럴드> 1871. 6. 17. 中

그리고 처음 한차례 교전을 벌인 미군과 대원군이 주고 받은 편지 내용.

당시 청나라는 아편 전쟁의 결과로 쇠퇴했고 베이징 조약까지 체결했으나, 대원군은 이를 보면서 더욱 해안 방어를 강화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듭해서 협상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원군은 역시 거부했고 결국 미군은 조선에 상륙해 공격한다.

당시 조선과 미국의 전력..

그리고 신미양요가 일어난지 불과 4년 뒤..

신미양요를 지켜 보며 조선의 병력 상황과 전투를 낱낱이 지켜보던 일본 군사정보원 안토 다로가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은 미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화도를 침공하여 조선 침략의 서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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