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실학자’ 안정복이 본 천주교

조선시대 천주교를 믿은 실학자도 있지만 천주교를 조목조목 지적, 비판한 실학자도 있다.

 

조선 실학자 안정복 [安鼎福, 1712 ~ 1791]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면서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순암은 20대까지는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이후 33세에 유형원의 저서를 접하고, 35세 때 비로소 성호 이익을 만나 그의 문하로 들어가 근기남인이 된다.

그 뒤 학문과 덕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1749년(영조 25)부터 만령전참봉·사헌부감찰·익위사익찬·목천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저서 중 특히 1778년(정조 2) 완성한 《동사강목(東史綱目)》(20권)은 자주적 ·객관적 ·실증적으로 한국사를 재구성하여 종래의 중국적 사관에서 벗어나 단군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한국사의 상한을 올려잡았을 뿐만 아니라, 종전에 모호하던 사실을 규명하였고, 외적의 침략에 항거한 장수들을 내세워 민족의 활기를 찾으려고 하였다.

사상적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양명학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고 천주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천주교는 사위인 권일신 등의 남인학자들이 신봉하고 있었는데, 《천학고(天學考)》와 《천주문답(天主問答)》을 저술하여 이교(異敎)로 지목하는 등, 그릇된 외래문화에도 적극 반대하였다.

즉 그는 경세치용의 경세론을 학문과 현실에 연결시키고, 그 정신으로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신보수적인 학자였다.

불교, 도교, 노장 사상등도 수용했는데 천주교만은 인정을 안했다고.

역학은 물론 무속등 온갖 분야를 두루 공부했는데 천주교는 아니라고 결론.

천주교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혹세무민 사기사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