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을 10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 일본 장군

일본에서는 삼대오물이라는 말이있다.

이는 과거 일본군의 패망을 앞당긴 일본군 장성 3명을 일컫는 말로. 적보다 무서운 아군으로 불리고 있다.

다음은 삼대오물중 독보적 원톱 수준인 무타구치 렌야이다.

무타구치는 한국에선 우스개 소리로 대한독립을 10년 앞당긴 사람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라고 할 정도인데, 그의 일화를 말하자면.

 

1. 일명 루거우차오 사건 때 중일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사람.

무타구치는 루거우차오에서 연대장으로 복무 중이었는데, 훈련 중 휘하 병사 하나가 실종됐다.

이때 중국의 소행이라는 섣부를 보고가 올라왔는데, 사태 파악도 하지 않고 독단으로 중국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황당한 불법전투 개시 명령은 부하들이 “정말 공격합니까?”라고 되물을 정도였는데, 결국 중일전쟁을 일어났다.

더 황당한 것은 전쟁을 일으킬 권한도 없는 자리에 있었는데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타구치는 이 사건 뒤 소장으로 진급했다..)

 

2. 이건 그 유명한 희대의 팀킬 임팔 작전 등으로 일본군을 수만 단위로 팀킬시킨 사건.

당시 일본군은 아라칸 산맥을 직접 넘어서 인도의 북부인 아삼을 기습하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무타구치는 보병 개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식량이 15일치이기 때문에 작전 기한을 15일로 잡는다.

하지만 아라칸 산맥을 집적 넘어 아삼까지 15일만에 갈 수 있을리가 없었고, 보급 작전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물론 전쟁 중 적에게 보급품을 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현대전에서는 식량 그리고 자군의 무기에 맞는 탄약을 취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또 적들도 바보가 아니라 후퇴하면서 적들이 보급품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1. 포탄을 싣기 위해 자동차 대신 소와 말을 쓰자는 무타구치의 말이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그러면서 소와 말의 사료 문제에 대해선

 

“이것 들은(소와 말) 초식동물이니 길가의 풀을 먹이면 된다”

는 말을 한다. 하지만 군부대의 보급과 같은 대규모 수송에 동물을 이용할 때도 마초역시 준비를 해야하는데, 이는 이미 크림전쟁에서 러시아군이 경험한 사실이다.

당연히 무타구치가 시행한 작전은 대실패이고, 소들은 지쳐 객사하고, 일부는 강을 건너다가 떠내려갔고 일부는 산맥을 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포격에 놀라 도망치기도 했다.

 

2-2. 현대전에서 항공기의 중요성을 망각한 명대사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나”

정작 영국 공군은 이 전투에서 포위된 자국 육군 진지에 계속 항공 보급으로 각종 물자를 쏟아부었는데, 당시 무타구치의 병맛스러운 지휘에 굶주린 일본군은 그 항공물자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기만을 고대했다.

운 좋게 자신들 쪽에 떨어지면 처칠의 급여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2-3. 적군에 대해 얼마나 방심하고 있는지 아는 명대사

“적을 만나면 총구를 하늘에 대고 3발만 쏘아 보라고. 그러면 자동으로 항복하게 되어있어”

이는 일본군 작전회의에서 보급이 원할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염려하는 의견을 제시한 보급참모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위의 명대사들을 급이 안되는 정말 희대의 명언을 하게 되는데..

 

3. 전투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수준의 발언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소와 말이 필요 없어지면 잡아 먹어라고 했는데…) 무타구치는 정글을 통할때 식량이 떨어지면 풀을 뜯어먹으라고 했는데, 이는 정말 무능력한 지휘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글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먹을만한 식물도 많이 없고 독성을 가진 식물이 많아 아무거나 집어 먹으면 안 된다.

정글의 왕 베어 그릴스도 정글에서 생존을 위해 벌레나 작은 동물을 잡아 먹는데, 잘 챙겨먹어야 하는 군인들에게 풀을 뜯어 먹으라니..

이러니 일본군은 영국군을 만나면 도마이기 바빳고, 정글을 빠져나오기 까지 90일이 넘었다고 한다.

 

게다가 상대는 영국군에게 고용된  구르카 전사단.

일본군은 구르카 전사단에게 죄다 썰려나간다.. 이때 구르카 전사단은 세계적으로 전설이 된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 10만 대군을 데리고 진격했으나 살아 돌아온건 고작 13,000명. 이 중에서 온건히 돌아온 사람은 3,000명도 안된다는 것을 보면 전쟁 역사상 흔히 볼 수 없는 대 전멸이다.

 

4. 일본 패망 후 장성들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무타구치는 연합군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이유로 혼자 무죄 석방된다.

 

적군 보다 무서운 아군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좀 보자면.

무타구치는 상부에서 내려온 학살을 단 한번도 실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잘못된 지휘로 처치한 적군의 숫자보다 할복시킨 일본 군인의 숫자가 2배 이상 더 많으며, 전체 군인의 10%는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었다.

 

그리고 모두를 경악하게 한 죽기 전에 남긴 그의 한마디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전부 부하 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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