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역사상 전례가 없던 분노를 보여준 미국의 무서움..


 						  
 								 

어제, 1941년 12월 7일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미합중국은 일본 해군과 공군에 의해 고의적인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합중국 대통령-

(일본에게 대일선전포고성명을 내며 의회에서 한 연설중 일부)

 

    

진주만 공습은 일본이 전쟁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진주만을 기습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은 중국을 공격하여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었으며, 또한 2차세계대전에 개입하려고 하였던 미국의 주도로 일명 ABCD포위망(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의 경제재재를 받고 있었다.

미국이 석유수출(약 일본의 수입량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를 끊어버리자 일본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을 기습공격해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용 가능한 미군이 전멸당하면 미국도 별수없이 협상에 응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이때 미국은 전쟁이 난다면 일본에 의해 동남아쪽 식민지에서 날거라고 생각하고 이를 명분으로 동맹국인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유럽에 끼어들 생각이었지 사실 일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그야말로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셈. 실제로 미국은 이때 불리한 상황으로 태평양에 있는 미해군은 전멸당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후 태평양전쟁때 꽤 오랜 기간동안 해군력에서 밀려 고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생각과 달리 미국은 전세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분노하여
협상 그딴거 없고 미친듯이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일본으로 출격하는 전투기들

 

루스벨트의 선전포고 이후 초기에만 애국심이 투철했던 약 천만명의 미국인이 자진입대하였고 태평양 전쟁이 끝날때까지 입대한 사람의 전체 숫자는 1610만명 정도였다.

미국은 전쟁이 끝날때까지 정규항모만 20척(호위항모를 포함하면 100척이 넘어간다), 전투기만 20만대, 전함, 상륙함등 군함만 7만척을 넘게 만들어내며 그야말로 양적에서도, 질적에서도 일본을 압도해버리게 된다.

 

폭격으로 폐허된 카고시마

 

미군 폭격후 아오모리

 

오사카를 폭격하는 B-29

 

미군폭격후 오사카시

 

미국폭격후 센다이시

 

도쿄대공습당시 도쿄가 불바다되던 사진

 

미전투기의 일본 본토폭격은 복수의 전초전이었을뿐.

1945년 8월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1차로 히로시마에,
팻 맨(Fat man)을 2차로 나가사키에 투하할 것을 명령했다.

 

일본 말살 작전 작전명 : 몰락

상륙성공시

1. 상륙지점을 제외한 10개 주요도시에 원자탄 수차례 투하.
2. 50여개 중소도시에 생화학가스 살포.
3. 전 일본국토에 6천여대의 폭격기로 융단폭격.
4. 일본의 농지에 약품살포. 생산불능으로 만듬.
5. 인구밀집지역에 독가스 살포,잔당처리.

작전의 예상결과는 7~8천만의 일본인구중 최소 5천만명 사망.(2차대전 사망자 : 6천 백만명) 작전이 끝나도 기아와 잔여독가스, 엄청난 방사능으로 사람이 못사는 땅이 될수도 있다.

이 작전이 시행되지 않고, 수차례의 공습과 원폭 두방으로 끝난 것이 일본에게는 축복이었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