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국어 구사에 위장의 신이었던, 대남 간첩 레전드

  						  
 								 

무함마드 깐수(본명 정수일).

그는 아랍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정도의 외모를 가졌다.

1934년(길림성) 연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조선족 출신이었던 그는 조선족 최초로 베이징 아랍어과에 입학했다.

베이징대학에서도 수석으로 졸업해서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이집트 카이로대학교로 유학도 가게되었고 나름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중국 내에서도 조선족은 매우 무시 당했다고 한다.

결국 염증을 느끼고 1963년 북한으로 스스로 귀화하게 된다.

김일성 종합대학 입구.

정수일은 김일성 종합대학 맞은편에 위치한 평양외대에 다녔다.

1974년까지 정수일은 평양 국제관계대학 교수와 아랍어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평양외대 아랍어 교수로 재직하던중 매우 뛰어난 언어능력과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것이 눈에 띠어 조선노동당에 의해 약 4년간 간첩교육을 받게 된다.

레바논 베이루트 전경.

1979년 1월 1만달러를 가지고 “레바논 국적을 취득해 남한에 잠입해 주요 정세정보를 수집하라”라는 지령을 받는다.

정수일은 당시 전쟁으로 국내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던 베이루트로 향한다.

레바논에서도 북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레바논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근데 레바논 국적으로는 남한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결국 정수일은 전세계 여러 곳곳을 걸치며 필리핀 아버지와 레바논 어머니사이의 아들인 무함마드 깐수로 국적을 세탁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1984년 연세대 어학당에 들어와 당연히 전혀 배울 필요 없는데 위장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척 했다.

정수일이 지령을 수신한 단파 라디오.

1984년 6월부터 라디오를 이용해 1996년 7월까지 161차례에 걸쳐 북한의 지령을 수신하고 정수일은 월간 잡지에 나온 신상옥과 최은희의 최근 소재지, 클린턴의 방한, 남조선 학생 운동권의 최근 동향, 최신형 전차 생산 및 첨단 첩보기 도입같은 기사들을 편집, 분석하여 중국 베이징과 선양으로 보냈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4차례 밀입북하여 김일성부자충성맹세문과 “조국통일상”을 수상하기도 하는등 간첩으로썬 꽤 훌륭하게 일했던 셈이었다.

1996년 2월까지는 암호편지를 이용해 약 75회 정보를 보냈다.

겉으로는 영어로 쓴 편지지이지만, 뒷면에 특수 잉크로 정보보고문이 작성되어져 식별이 불가능했다.

이 잉크는 작성 뒤 20분 정도 지나면 육안으로 절대 확인할 수 없으며, 특수 약품 처리를 해야 글씨가 나타나는 특수 잉크였다.

정수일 검거의 1등공신, 팩스.

정수일은 손글씨 쓰기가 귀찮아졌는지 전송수단을 팩스로 바꾸게 되는데, 결국 이는 그를 검거하게된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1996년 3월 안기부는 서울 시내 특급 호텔 비즈니스센터 팩스를 통해 남한의 군사정치정보가 외국으로 전송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팩스의 수신지는 북경 주재 북한대사관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안기부는 시내 각 호텔 근처에 CCTV를 설치해 감시했다.

웬 아랍계로 보이는 사람이 비즈니스센터를 이용해 특정시간대에 북경으로 팩스를 전송하는게 아닌가?

안기부는 몽타주를 만들어 시내 각 호텔에 돌리면서 신고를 부탁했고, 결국 1996년 7월 호텔에서 팩스를 발송하려고 시도하던 중 호텔직원 김모양(26)이 팩스 고장을 가장해 전송을 지연시키면서 간첩신고를 해서 정수일은 체포된다.

훗날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첩보 내용만 보면 북쪽에서 도움이 될 만한 가치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 철저한 위장

정수일의 위장 능력은 가히 최고였는데 아내조차도 정수일이 검거되기 전까지는 그가 간첩인 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잠꼬대도 아랍어로 했다고.

그리고 철저히 정치적 발언을 입에 담지 않았으며, 가끔 가다 무슬림들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코스프레까지 하는 등 거의 완벽한 위장을 보였다.

한국 이란 축구경기.

또한, 교수로 활동할 당시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과 아랍권 국가가 축구경기를 할 때면 늘 아랍국가를 응원했다고 한다.

교수 임용을 할 때도 신원조회 절차가 있었지만 워낙 치밀하게 위장해놔서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남한에서 한 결혼이 초혼도 아니었고 북한에도 아내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취조를 시작하는 안기부.

안기부에서 “간첩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이 알고 있었나”라는 질문에 북한의 조강지처 이야기부터 먼저 꺼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하마드 깐수라고 극구 주장하다가 안기부 수사관이 서류상 고향인 필리핀 민다나오섬 사투리를 물어보자 대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술술 자백을 했다.

결국 자신은 북조선에서 온 간첩임을 시인했고 곧바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수일은 사형을 구형받고 전향의사, 사실상 빼내온 정보들이 국가 기밀 탐지 혐의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12년형을 선고받게된다.

그러다가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광복절특사로 출소시키고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특별사면 및 복권을 시켜주었다.

■ 여담

실제로는 한국어 외 11개국어를 구사했으나 의심을 살까봐 철저히 숨기며 살았다.

그가 옥중 서신으로 밝힌 외국어 능력은 어마어마했는데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아랍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마얀마어, 필리핀어 까지 할수 있었다.

2004년에 찍힌 사진.

꽤나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었고 학문에 대한 의지도 있던 사람이었는데 비록 조선족이지만 한국에 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는 아랍문화관련해서 꽤 알아주는 석학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