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국보 1호 ‘숭례문’에 불 질렀던 방화범 근황


 						  
 								 

국보 1호 숭례문을 불태운 방화범 채종기가 징역 10년을 복역한 후 올 2월 만기출소한 사실이 재조명받고 있다.

10년 전,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매서운 불길에 휩싸여 타버리고 말았다.

당시 수 많은 소방대원 인력이 투입되었으나 숭례문을 뒤덮은 불을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화재 5시간 만에 숭례문 1층과 2층의 목조 누각 상당 부분이 재가 되었다.

수 많은 시민들은 뉴스를 통해, 또 가던 길을 멈춰 불에 타는 국보 1호를 지켜보며 원통해 했다. 또 분노했다.

바로 이 화재가 한 노년 남성이 저지른 방화 범죄였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10일 불을 지른 방화범 채종기(80)는 화재 하루 뒤인 2월 11일 인천 강화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화재 4일 뒤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채종기의 범행 동기도 논란이 되었다. 당시 그는 경기도 고양시에 소유한 토지가 있었는데, 그 토지가 도로 건설에 이용되면서 받은 보상금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이유였다.

그는 언론사에 제보를 하고, 청와대에 민원까지 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국보 1호를 방화해 이목을 끌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그는 숭례문 방화를 하기 전에도 창경궁 문정전을 방화해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던 전과자였다.

전과자답게 채종기는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그는 수 차례 숭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침입할 방법을 모색했다.

범행 당일 저녁 8시 40분경, 그는 가연성 시너를 들고 사다리를 타 숭례문 누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시너를 부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여 방화를 저질렀다.

채종기는 방화 2개월 뒤인 2008년 4월 25일 재판을 받았고, 당시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숭례문은 국보 1호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이 화재로 국민들은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수치심,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종기는 재판 과정에서도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 없이 “보상금이 적었다”고 계속 불만만 제기했다.

1심 판결 후 3개월 뒤에 열린 2심에서도 징역 10년형이 내려졌고,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확정했다.

채종기는 10년을 복역하고 올해 2월 만기출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에 누리꾼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다” “국보 1호를 개인의 10년과 맞바꿀 수 있구나”라며 분노했다.

한편 숭례문은 화재 후 5년 넘는 복원 공사를 거쳐 지난 2013년 5월 다시 일반 시민들에 공개됐다.

2018. 저작권자(c) 지식의 정석 (무단 사용-재배포 금지) / 사진 = 연합뉴스


놓치면 후회할 기사 더보기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에게 “차 좀 뒤로 빼주세요”라고 말한 시민;;;

지난 2015년 방송된 EBS 사선에서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는 화재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모습이 등장한다.

화재 진압을 위해 일분일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 소방관들은 신속하게 차에서 내려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시민이 다가온다.

인근 상가 상인으로 추정되는 그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소방차를)뒤로 좀 빼달라. 영업해야 하니 뒤로 옮겨달라”고 요구한다.

소방관들은 “안에 사람이 있어서 확인을 빨리 해야 한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시민은 “입구를 터줘야지 이렇게 놓으면 어떡하냐”며 소방관에게 큰 소리를 친다.

소방관들은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들어가야 했기에 이 시민의 황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현장에 들어간다.

실제 소방관들이 들어간 화재 현장에는 유독 가스로 가득 찬 집안에 고령의 남성이 잠들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질식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