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부의 역사

2016년 May 25일   admin_pok 에디터

일제의 조선 총독부 건설

일제가 서울의 경복궁 입구에 완공시킨 조선총독부 건물 – 1926년

성조기를 꽂은 조선 총독부 건물 앞으로 행진하는 미 제7 보병 사단 군악대와  하지 중장 – 1945년




해방 한달후 미군에 접수된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 앞의 풍경 – 1945년 9월

전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서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 행사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조선총독부 건물은 그 이름이  중앙청이라는 건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서울 함락후  중앙청에 내걸린 북한군의 인공기 – 1950년

서울 탈환후 불탄 중앙청 앞에 포진시킨  7.62mm 30 기관총좌의 국군과 미군

서울 수복후 태극기를 게양하는 해병대원 – 1950년 9월 28일

6.25 동란으로 검게 그을리고 파괴된 중앙청의 모습

중앙청 앞에 포진된 곡사포

중앙청이 보이는 파괴된 건물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뒤지는 모녀 – 1950년 11월

1.4 후퇴 1달전의 서울 중앙청 – 1950년 12월

6.25 사변 한국전 당시 서울 수복 이후의 모습 – 1951년 10월 초

광화문이 옛자리로 옮겨지기 전의 모습 – 1966년 10월 29일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모습 – 1988년 9월

84년만에 다시 복원된 광화문 – 1993년 9월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1395년) 개국과 함께 지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200년 후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 경복궁 전체가 소실된 채 방치되다가

고종 2년(1865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광화문도 중건했다.

1926년 일제강점기 때인 경복궁내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경복궁내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으로 광화문 상부가 다시 불에 타 사라졌다.

1968년에 다시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목조 건물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건립했다.

그 후 2006년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작업으로 2010년 8월 15일 복원됐다.

중건 당시에 만들어진 해태상은 일제 때 경복궁 안에 방치됐다가 복원된 광화문 앞에 다시 세웠다.

 하지만 원래위치는 현재보다 80m 앞이다.

그것은 그 곳이 자동차 도로 지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재 위치에 남겨졌다.

 해태상은 광화문 지킴이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물이었다.

해방이후 50년만에 비로소 대한민국 서울 중심부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해 일제의 잔재를 철거하는 모습 – 1995년 8월

출처

//www.etorrent.kr/bbs/board.php?bo_table=humor_new&wr_id=4103093&page=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