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다친 후로 천재가 되어버린 사람들 TOP 5

  						  
 								 

보통의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자랑하는 천재들 중에서도, 뇌를 다쳐 천재가 된 특별한 후천적 천재들을 만나보자.

5. 리 엘세그


2009년 리 엘세그는 콜로라도 목장에서 골짜기로 추.락하게 된다.

머리와 척추를 손상하고 평생 휠체어를 면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예상외로 척추는 완치가 되었지만, 뇌는 그렇지 않았다. 기억상실이 되어 버린 것.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도, 가족에 대한 기억도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기억상실을 메우듯 새로운 재능이 피어났다.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택한 것이다.

작품을 제작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수학의 방정식에 기초한 이미지를 창작하고 있다”

4. 앤서니 치코리아


1994년 앤서니 박사가 공중전화를 걸기위해 다가서자 어디선가 눈부신 빛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수화기에 명중하면서 얼굴을 강.타하여 충.격으로 쓰.러진다.

그가 나중에 말하길 “몸에서 쫓겨난 것 같다”.

정신이 들자 달려온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공중전화 부스에서 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로부터 몇 개월 동안 일상생활을 되찾으려 하지만 모든 일에 집중을 못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해 가지만, 하나의 충동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바로 참지 못하는 작곡의 충동.

그는 꿈속에서 음악을 들었는데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피아노를 빌려 연습을 시작하고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틈만 나면 음악 속에 빠져든 그는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더라도 작곡을 중단하지 않았다.

신경 과학자 올리버 삭스는 “이 격변은 낙.뢰에 의한 측두엽 발작이 원인이다”라고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이 현상의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3. 헤더 톰슨

헤더 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성은 SUV에 식료품을 실다가 트렁크 문에 머리를 부.딪.쳐서 쓰.려졌고 외상성 뇌손상을 입었다.

사고 후 톰슨은 빛, 색깔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자극적으로 보이는 증상을 겪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고, 가족을 버리고 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러다 어느 날 이웃이 붓을 들고 와서 마음을 평화롭기 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하는데, 톰슨은 이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사로 잡히게 된다.

톰슨은 그림 그리기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남편과 이혼을 하고 도시생활을 포기한 후 화가가 되었다.

2. 프랑코 매그나니


프랑코 매그나니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이태리 이주민이다.

그런데 그는 정체불명의 병을 앓아 망상 상태에다 열이 많아 침대에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병을 앓는 동안 그는 이태리 폰티 토의 어릴 적 집에 대한 꿈을 계속 꾸었고 잠에서 깨면 그는 꿈속의 집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릴 수가 있었다.

그의 병은 특별한 간질 형태로 뇌의 특정한 부분을 자극해서 유년기의 모든 걸 완벽하게 기억할 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이 능력은 한 사진사가 매그 니니의 그림과 20년 전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서 정확하다는 걸 인정받았다.

1. 올란도 세롈


1979년 올란도 세렉은 아직 아이였을 때 야구공에 머리를 맞는다.

사고 후 그는 두통을 겪는데 그러다 어느 날부터 두통이 멎게 된다.

그런 후부터 그는 모든 걸 기억하기 시작했다. 무슨 옷을 입었고, 날씨는 어땠고, 아침은 뭘 먹었고 등등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기억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일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 외에도 미래를 아는 예지 능력까지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세렐은 100년 후의 며칠이 무슨 요일인지를 계산을 하지 않고 바로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현재 세렐은 과학자들의 뇌손상과 인간 지능에 대한 연구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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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최강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들

1. 홍의장군 – 곽재우

뜻대로 싸.우고, 뜻대로 살다간, 우리 역사에 드문 쾌남아

조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천강홍의장군(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의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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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귀몰한 전술 및 붉은옷의 장수같은 신기한 이미지덕분인지 임진왜란 의병장중에서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높은 편입니다.

신출귀몰한 곽재우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을 바탕으로 강변의 깊고 얕음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이 주특기였습니다.

1592년 10월에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 때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등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2

2. 김시민

조선내 임진왜란 최고의 명장 중 한명 고집불통의 쾌남아

병조판서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격분한 김시민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아 부수면서 “장부가 이것이 아니라면 어찌 남에게 모.욕받을 수 있는가!”라며 소리치고는 바로 벼슬을 던지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평가나 병조판서에게 이렇게까지 대들었던 일화를 보면 김시민은 흔히 말하는 남성적인 면이 매우 강한 천상 무인이었고, 자존심도 매우 강했던 성격으로 보입니다.

진주대첩시 3800명의 병사로 3만대군에 맞선 명장으로 죽.은 후에도 영웅으로 대접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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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알천

호랑이를 압도하는 무력

최초의 등장은 636년(선덕여왕 5년)의 옥문곡 전투로, 서라벌을 노리고 백제 무왕이 침.투시킨 백제군을 기.습해 괴.멸시켰습니다.

2년후 638년 10월 당나라와 화친하여 어느정도 북방을 안정시킨 고구려의 영류왕이

북방의 요충지인 칠중성을 공.격하자 직접 출전해 민심을 수습하고 그해 11월 칠중성 밖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했습니다.

기록은 적지만 상당한 지휘력을 갖춘 명장이었으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화백회의 도중 난.입한 호랑이를 맨손으로 집어던질 정도로 용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4

4. 이징옥

한국 역사상 최강의 맨손 파.이.터

조선의 무관이자 이징옥의 난의 주도자 맨손 무력만으로 놓고보면 한국 역사상 최강으로

불려지는 인물로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야사에 그 초인적인 용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형 이징석과 동생 이징규도 당대에 무인으로써 3형제가 모두 용명을 떨쳤습니다. 호랑이를 10대 시절에 맨손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종 시대부터 북방에서 근무하여 여진을 상대로 용맹을 떨쳐 여진족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여진족의 천적.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는 무식한(?) 무장으로 보이지만

나름 임기응변에도 뛰어나고 청렴하며 성실한 인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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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금필

후삼국시대의 최강의 명장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호족. 후대의 강감찬, 척준경, 최영,

이성계와 함께 고려 초기, 중기, 후기를 대표하는 최강의 장군으로 왕건에게 굉장한 신임을 받았습니다.

유금필은 북번의 추장 300여명을 불러 성대한 술파티를 연뒤, 이들이 취하자 위.협하여 단숨에 그들을 복종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번의 각 촌락들마다 사람을 보내서 너희 추장들이 다 복종했으니 이제 그만 니들도 숙이라고하여 무려 1,500여명이 항.복했고, 포.로로 잡힌 고려인 3,000여명을 귀환시키는데 성공해 태조가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비교적 빈약한 편인 후삼국시대 자료로 이 정도의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유금필만 있으면 전황이 어떻든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진족을 복속하고 그들에게 대추장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니 정치력 또한 일품이였습니다.

6

6. 두경승

고려의 용장

글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활솜씨가 뛰어났다는 기록도 있고, 그의 임기응변이 전세를 뒤집어놓았다는

기록도 있는 등 군인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더불어 성품이 온후하고 가식이 적었다는 기록까지 있는것으로 보아 인덕도 갖춘 용장.

7

7. 견훤

문무를 갖춘 군주

견훤은 한때 고려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 세우고, 1000년을 이어온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군주였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훌륭한 야전사령관이었고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전술적 면모도 갖추고 있었음은 틀림없습니다.

별다른 빽도 없이 경주로 들어가서 순수한 실력만으로 비장 벼슬을 얻은 것만 봐도

그 실력만큼은 확실합니다.

그것도 부정부패가 하늘을 찔.렀던 신라 말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것입니다.

특히 군사적 재능만 따지면 왕건보다 한 수 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재능도 재능이지만 끈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습니다.

8

8. 안시성주 (양만춘)

우주방어의 맹장

그야말로 1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의 최고의 영웅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활약상을 보였습니다.

비록 안시성이 견고하고 식량도 상당량 비축되어 있었기에 방어하기에는 유리한 곳이었지만 당시 안시성 공략에 나선 이들은 수없이 많은 중국의 군벌들을 무.찌.르고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당태종,

당대에 당나라 최고의 명장 가운데 하나였던 이적, 그리고 황제의 오른팔 장손무기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런 괴물같은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켜낸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으며, 하다못해 당태종이 이 싸.움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바람에 다 이겨가던 전쟁에서 패하여 돌아갔을 정도이니 엄청난 명장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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