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이 ‘한국인’ 잡아내려고 했던 충격적인 방법

2020년 April 21일   admin_pok 에디터

까도 까도 계속해서 나오는 일본의 만행. 그들은 왜이리 못된 짓만 하고 다녔을까.

1923년 9월 일본 수도권을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했었다.

우리는 이를 관동대지진이라 부른다. 5분 간격으로 3차례 일어난 지진으로 이틀만에 규모 6이상의 여진이 무려 15번이나 일어나 일본 정부 조직이 마비되었으며 결국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뿐일까, 12시 점심시간에 발생한 지진이라 밥을 준비하던 각 가정집과 음식점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지진과 대화재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린 일본인들은 약 3~4주에 걸처 일본 관동 지역에 있는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인종 집단 살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끔찍한 일은 관동 대지진 학.살이라 불리며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계기는 한 신문사에서 날조한 기사때문이었다. 1923년 9월 10일 매일신보에는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 테러, 강도를 계획하고 있으니 주의하라”

이런 과격한 유언비어는 점점 퍼지기 시작했고 일본인들은 헛소리를 믿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들이 직접 들은 내용인 마냥. 우선 조선 복장을 한 이는 가차없이 바로 살해당했고 여자들은 윤간당했다.

치밀한 일본인들은 학.살을 피하기 위해 일본식으로 꾸민 조선인들을 구별해내기 위해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十五円五十銭(십오원오십전), じゅうごえんごじゅっせん(쥬우고엔고쥿센), )이나 だいこん(다이콘) 등의 단어를 읽어보도록 시켰다.

그들은 들어보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살해하였다. 일부 조선인들은 무차별적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경찰서 유치장 안으로 피신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서까지 쫓아와 학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일본 경찰들은 이러한 학.살을 보고도 못본척 눈감고 있었으며 심지어 주도하기까지.

참으로도 못난 짓, 나쁜 짓 다 하고 다녔던 일본. 언제 정신 차릴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만큼은 꼭 권선징악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한편, 이를 본 네티즌들은 “영화 박열보고 빡쳤음”, “야만적인 원숭이들”, “저런애들이 지금 한국와서 아이돌되려는거 보면 진짜”, “역사를 잊으면 안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콘텐츠 저작권자 ⓒ지식의 정석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사진 = 영화 박열 스틸컷, KBS뉴스 영상 캡쳐,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