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힘, 호전적인 성격, 전투에서의 공격성, 용감함, 충성심,탄력과 뛰어난 전략을 가진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전투민족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카자크
이들의 위대함은 시베리아의 정복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16세기 이후 몽골로부터 독립한 러시아가 이들을 앞세워 시베리아를 차지하고 있던 몽골계 유목민족들을 모두 제압하고 시베리아 동쪽 끝까지 정복해 나갔는데요, 예니세이스크, 하바로프스크, 토볼스크 등의 시베리아의 도시들은 대부분 이들이 요새화한 정착지에서 기원하며 ‘예르마크’가 이끄는 카자크 부대는 1581년 사설원정대 주제에 시비르 한국의 수도까지 정복해 시비르 영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족답지 않게 해적질도 했습니다. 사하이다치니가 수령으로 있던 17세기 초에는 차이키(러시아 어로 바다갈매기란 뜻)란 소형선박을 300척 가량 건조한 후 그 선박을 가지고 흑해를 휩쓸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 근교지역까지 약탈하고 크림 반도의 노예시장을 털고 그 곳을 지키던 14,000명의 병력을 몰살시켜버릴 정도로 활약하는 통에 흑해는 한때 ‘카자크 해’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2. 앵글로색슨족
게르만족의 일파로서, 로마 제국의 붕괴 시점인 서기 5세기경 지금의 영국 남부인 브리타니아를 침공해 장악한 전투종족입니다.
현재 영국인들의 조상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앵글로색슨족은 대륙에서 영국으로 흘러든 앵글로색슨은 10~11세기경이면 순조로이 잉글랜드 통합을 완료하고 독자적인 왕조를 개창합니다.
영국 왕이 노르만의 근거지인 노르망디까지 차지함에 따라, 영국은 앵글로색슨의 나라로서 더 굳건한 정체성과 결속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중세 이후 대륙 세력이 근대까지 종교와 영토 싸움 등으로 치고받는 사이 섬 안에서 독자세력화해 민족주의를 태동시켰고, 이에 따라 앵글로색슨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첫 민족’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섬을 이탈해 미국과 캐나다 건국의 핵심 세력이 되었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 두 국가는 ‘앵글로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동질적 그룹에 묶이게 되었는데요, 19세기 대양을 제패한 대영제국과 21세기인 현재 세계 제1 초강대국 미국의 가장 주도적 세력이며, 현재 로마 이후의 여러 부족 중 가장 성공한 세력이자 최후의 승자라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3. 훈족
훈족은 고대 로마의 쇠퇴기당시 몰락에 직,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정체불명의 유목민들입니다.
4세기 중반 유라시아 대초원 서부에 나타나 흑해 북안의 게르만족들을 격파하고 복속 시킨 것이 훈족의 첫 등장입니다.
이 당시 로마측은 국경 저 멀리에서 야만족들끼리 치고 받는다는 정도로만 사태를 파악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는데, 훈족을 피해 서쪽으로, 남쪽으로 도망친 고트족이 도나우 국경에 나타나며 로마에서도 큰 난리가 납니다.
이후 훈족을 이끄는 아틸라는 440년 말 동로마를 침공했고 442년까지 발칸 북부의 주요 군사거점들을 여럿 함락합니다.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은 고트족과는 다르게 공성전에도 능숙했습니다. 동로마 정부는 442년에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조약은 연공으로 황금 1,400 파운드를 지급하는 조건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아틸라가 처음에 거절한 연공 조건이 700 파운드였으며, 이것이 그 전해의 350 파운드를 두배로 늘린 조건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3년만에 연공이 네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또한 로마는 훈족 사이의 내분에서 패배하여 로마로 망명해있던 망명자들을 훈족에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4. 구르카
네팔의 군인들 또는 용병을 일컫습니다. 현지에서는 ‘고르카’라고 불리며 고르카 지역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영국 육군의 용병에 긍정적이었던 구르카족들을 지금까지 용병으로 잘 고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계 최고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덕에 일반인이라면 정신도 못차릴 고지대에서도 뛰어다닐만큼 심폐량이 높으며, 그에 따라 신체능력도 당연히 뛰어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 육군의 일부로 정글등지에서 일본군을 기습하여 큰 손실을 입혔으며,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나라들은 모두 이들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심지어 포클랜드 전쟁때 일부 아르헨티나 육군 병력들은 구르카 부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항복하거나 도망쳐 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국 육군의 규모가 많이 축소된 최근에도 여전히 중요한 전투부대중 하나로, 이라크에도 파병중이며 평화유지군으로도 파견되어 있습니다.
5. 몽골족
몽골인들은 초기 거란이나 여진 같은 유목민족에게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중소 유목민족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각 부족 간의 분열이 워낙에 잦았기 때문에 타 유목민족에 비해 약소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공포 칭기즈 칸의 탄생에 몽골은 역사상 다시 없는 전투민족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몽골의 성장을 본 남송은 금나라를 요격하기 위해서 몽골에게 지원을 했고, 이것은 몽골의 성장을 가속화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약탈로 인해 우수한 군사기술력과 재원을 확보한 몽골은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해 호라즘 왕조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부유한 오아시스 국가들을 박살내며 막대한 부를 획득했습니다.
이후 몽골족은 동유럽, 서아시부터 고려까지 정복한 초대형 전투민족으로 북상합니다.
6. 바이킹
바이킹은 8세기 말에서 11세기 중반에 걸쳐 활동한 이들을 가리키며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가지고 있어서 8세기-11세기사이에 유럽의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등의 해안지방은 물론이고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근교마저 약탈한 기록이 있습니다.
9~10세기에 남하해서 남우크라이나 지방에 정착한 바이킹의 일파들은 바랑기안 가드로서 동로마 군에 복무하였습니다.반란과 배신이 판을 치던 난세에 용병으로서는 보기 드문 충성심, 그리고 바이킹 특유의 무자비함과 용맹을 발휘하며 동로마 최정예 근위대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7. 바다민족
‘바다 민족’은 기원전 12세기경의 기록에 등장하여 당시로써는 대제국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 사라진 수수께끼의 민족들입니다.
이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이집트 쪽의 기록에 등장합니다. 당시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군대였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나라들은 몇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민족의 연맹체였고 주로 배에 상륙하여 해안가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주변의 중동 국가들과 이집트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바다 민족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이들이 단일 민족이 아니었음은 확실합니다.
이들이 수수께기 민족이라고 불리우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과 만난 문명이 이집트와 아시리아 빼고는 다 전멸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들조차도 간신히 살아남은 경우로 이들은 바다 민족의 주요 침공 루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8.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미케네 문명이 파멸할 때 살아남은 몇 안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페르시아 전쟁 이전부터 그리스 육군 최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그 결과 페르시아 전쟁 시 결성한 델로스 동맹에서 수장직을 맡았습니다.
스파르타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플라타이아 전투로, 그리스 본토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주도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군이 주력이 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을 크게 물리치며 페르시아를 내쫓는데 성공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출처 – 플래시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