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흑인이 흑인들 착취했던 이상한 국가

2021년 July 30일   admin_pok 에디터

흑인이 흑인을 착취하던 나라가 있다고 한다.

1816년에 미국 워싱턴의 퀘이커교도들과 노예 소유주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식민협회 (American Colonization Society, ACS)가 결성되었다.

퀘이커교도들은 노예제에 반대했고, 노예 소유주들은 흑인들의 해방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흑인들을 아프리카에 되돌려 보내는 데 합의했다.

퀘이커교도들은 흑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선교에 기여하리라고 희망했다.

반면 노예 소유주들은 노예 봉기를 피하자는 생각이었다.

이 협회의 후원으로 1822년에 흑인 86명이 아프리카의 ‘곡물 해안’이라는 곳에 도착했고, 그 뒤 많은 흑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땅을 사기도 하고 현지 주민들한테서 빼앗기도 하면서 거주지를 확대했다.

1824년에 이 땅은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따 먼로비아라고 했으며, ‘라이베리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역설은 자유 공화국을 자부하면서 실제로는 미국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흑인들이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현지인들을 노예화했다는 것이다.

해방된 흑인 노예들은 지난 몇 백 년간 문명과 문화, 그리고 옷이나 매너, 종교 같은 것들은 배웠다.

그러나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 등 문명과는 뒤쳐진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1800년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을 남들이 모르면 상당히 무시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된 흑인 노예들은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을 상당히 무시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미국 정부의 생각이었다.

미국 정부는 애초에 라이베리아로 보낸 흑인들을 이용하여 라이베리아라는 미국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싶어했는데. 달리 말하면 라이베리아로 이주시킨 북미의 흑인들을 감독관이나 간부들로 앞세워서 당시 원래 살던 라이베리아의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착취할 생각이었다.

1841년 미국은 최초로 라이베리아에 조셉 젠킨스 로버츠라는 흑인 총독을 임명했다. 총독은 라이베리아의 원주민들을 보고 미개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1864년 미국이 스스로 라이베리아를 독립시켜줬다. 그 이유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변 아프리카 지역에 계속해서 식민지를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국와 프랑스의 식민지가 자신들과 겹쳐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아프리카 최초의 민주공화국으로 라이베리아라는 국가가 탄생하게 됐다.

미국이 독립시킨 라이베리아는 민주공화국이었으니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 건너간 흑인들이 원주민들의 투표를 막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라이베리아로 건너간 흑인의 경우 전체 인구의 5%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원주민들을 계속해서 착취했다. 노동자로 부려먹으며 월급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무려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특히 1971년부터 1980년까지 대통령을 하던 윌리엄 토버트는 만행을 저질렀다.

윌리엄 토버트의 친동생은 쌀 유통회사를 운영 중이었는데, 이 친동생을 위해 윌리엄 토브는 쌀값을 크게 올렸다.

50kg에 22달러였던 것을 하루아침에 30달러로 올린 것이다.

겉으로는 농민들의 이윤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윌리엄 토버트이 친동생만 부자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라이베리아는 과거 미국에서 이주해온 흑인들의 후손들과 원주민 흑인들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라이베리아는 대통령은 과거 파리 생제르맹의 선숙로 유명했던 라이베리아 출신 조지 웨아다.

그러나 라이베리아의 경제 상황은 좋지 못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광산개발들은 선진국의 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계속해서 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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