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뒤덮은 괴생명체 때문에 한국이 이득 보고 있는 이유

2021년 August 3일   admin_pok 에디터

현재 호주를 뒤덮은 괴생명체 영상이 공개되며 전세계인이 경악했지만 한국인들만은 타격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호주가 쉴새 없이 늘어나는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로 쥐 때문에 골치아파진 호주의 한 농부는 하루에 7000 마리의 쥐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쥐들이 발생시킨 분노때문에 오염되어 버린 2년치 분량의 곡물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또한 한 주민은 쥐떼가 소파랑 전선을 갉아먹는 등 재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있는 교도소 또한 쥐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교도소에 침투한 쥐떼는 내부 전선과 천장 마감재를 갉아먹었고 분뇨를 뿌렸다. 이에 200명의 직원과 420명의 수감자가 대피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한 때 늘어나는 쥐 떼로 인해 쥐 퇴치가 가장 시급한 국가적 해결 과제였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집에 서식하는 ‘집 쥐’가 무려 1억 마리였다.

게다가 자연에 사는 ‘들쥐’는 11억 마리로, 모두 합해 총 12억 마리의 쥐가 뒤덮고 있었다.

이 때에는 아직 정부의 위생 정책이 발달하지 못했고 개인의 위생 또한 신경 쓰기 힘든 환경이었기에 쥐떼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때 우리나라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다.

일명 ‘쥐 박사’로 불린 그는 현 CESCO의 전신인 전우방제의 설립자인 전순표 박사다.

어릴적부터 쥐의 횡포를 겪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 농수산부 재해대책계로 근무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힘들게 생산한 쌀을 쥐가 모두 먹었다는 제보가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쥐 때문에 농업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를 지켜본 그는 ‘농산물 저장에 있어서의 피해 방제법’ 장학생 공고를 냈고, 1962년 영국으로 쥐를 잡기 위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쥐를 잡기 위한 모든 방법을 연구하고 ‘쥐 박사’가 된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정부에 ‘쥐 잡기 날’을 건의했으며 영국에서 가져온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쥐약을 무상으로 나눠주기 위한 예산을 얻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은 부족했고, 애초에 계획한 1kg에 못미치는 200g을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효과적으로 쥐를 퇴치할 수 없었고, 이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다시 한 번 본격적인 쥐 퇴치 연구에 돌입했다.

마침내 1973년에는 쥐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며 박사 학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쥐약을 만들었으며 쥐 퇴치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전우방제’를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비싼 가격으로 인해 그가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점차 사람들은 그의 쥐 잡기 방법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계약한 곳은 여의도의 한 슈퍼였다. 그는 이 슈퍼에 있는 쥐를 단 몇 개월 만에 모두 잡아준다고 계약했고, 단 2개월 만에 모든 쥐를 잡아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백화점, 제과회사, 공장에 들어갔고 전우방제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우방제는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1000여 명의 전문 방제요원을 거느린 세계 4대 기업 CESCO가 되었다.

지금 시대에도 쥐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는 사례가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수십 년 전에 숙제를 마친 한국인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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