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30년 전 발견된 무덤 꽁꽁 감췄다가 최근에 공개하자 난리난 일본

  						  
 								 

30년 전에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한국 정부가 공개하지 않았던 유물이 드디어 공개됐다.


임나일본부설은 4~6세기 경 일본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 임나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세워 통치했다는 말도 안되는 학설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사실상 폐기된 학설이지만 일본은 계속해서 교과서에 넣고 사실이었던 것처럼 교육하고 있어 논란됐다. 현재 그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30년 전 발견된 함평 신덕 1호분을 한국 정부가 숨겨왔던 이유도 다 임나일본수설 때문이었다.

해당 무덤에는 일본의 문화와 백제가 섞인 양상의 유물들이 발견됐고, 1991년 열쇠구멍 모양의 ‘전방후원분’이 발견되자 우리나라는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전방후원분’은 고대 일본에서 흔히 발견되는 무덤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었다.

2000년까지 4차례 조사가 행해졌으나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신덕 1호분 발굴 조사에 일본 학자들까지 참여시켜 연구를 진행했다.

일본은 여기서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으나 나오지 않았다.

신덕 1호분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면서 일본의 말도 안되는 주장 임나일본부설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 봤을 때는 일본인의 무덤처럼 보였지만 신덕 1호분 속에는 전혀 다른 유물들이 발견됐다.

6세기 영산강 일대 지배세력에 대해 알려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물들이었다. 이 무덤의 주인은 20~30대의 남성으로 꽤 높은 신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와 함께 묻혀져 있던 금동관, 금동신발, 연리문 구슬, 중층 유리구슬, 쇠비늘 갑옷, 투구, 큰 칼 등 다양한 유물들이 나왔다.

또한 이 무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백제와 일본의 문화가 섞인 듯한 양식의 유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영산강 일대를 지배하던 세력이 백제나 가야,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였던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리 구슬 중 일부는 원료산지가 태국일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렇게 발견된 유물들로 가까운 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다양한 문화교류가 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산강 유역은 다른 지역보다는 백제와의 관계가 깊어보이는 것으로 추정되며, 호남 지역에 있는 전방후원분은 겨우 10여 곳에 불관했다.

따라서 진짜 일본이 그곳을 통치했었다고 보기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규모였다.

다만 이 흔적들은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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