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망할 것이라 했던 나라에 젊은 한국인이 추장되자 벌어진 일

  						  
 								 

옥수수 한 알로 세상을 바꾼 한국인이 있다.

전세계의 기아 문제 해결에 기여한 이 사람은 바로 대한민국의 농학자이자 국제 옥수수재단의 대표 김순권 박사다.

김 박사는 ‘옥수수에 미친 과학자’, ‘옥수수로 세상을 먹여 살린 남자’ 등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 평생을 옥수수 연구에 매진한 사람이다.

그는 울산농업고등학교를 거쳐 경북대 농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농촌진흥청에 입사했다.

그는 보다 넓은 세계의 학문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미국에서 한국 것보다 품질이 월등히 좋은 미국의 옥수수를 보고 자신이 연구할 방향을 정했다.

한창 옥수수 연구에 매진하고 있던 1979년, 김 박사에게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에서 팩스가 왔다.

“5억명의 아프리카 인구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당신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이를 본 김 교수는 주저하지 않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렇게 김 교수의 약 17년 간 아프리카 옥수수 연구 여정이 시작됐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옥수수를 비롯한 농작물에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전혀 생산되지 않고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에 김 박사는 오직 연구에만 매달렸고, 매일 300만평에 다다르는 연구소 대지를 누볐다. 아프리카의 척박한 토지에서 생존할 수 있으면서도 병충해에 강한 종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김박사는 저항성 복합유전인자를 이용해 잡초와 병충해에도 견뎌내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985년에는 이 교잡종 옥수수 재배에도 성공했다.

당시 국제열대농업연구소에서 그가 개발해낸 품종을 보고 감탄했다.

게다가 김순권 박사는 아프리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는 기생잡초 ‘스트라이가’에 대한 파훼법도 제시했다.

농약으로 방제하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뽑아내면 더욱 번성하는 스트라이가는 대부분의 농작물에 기생을 하며 기아 난에 큰 일조를 하고 있던 잡초였다.

스트라이가는 서양학자들도 해결하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난제였다.

김 박사는 스트라이가를 극복해내는 것 역시 시급한 일이라고 판단해 스트라이가 해결법을 개발했다.

그는 스트라이가를 직접 키워가며 최소한의 영양분을 줬다. 그리고 공생할 수 있는 신품종을 개발해냈고, 이에 73%에 이르던 스트라이가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무려 5%까지 줄어드는 놀라운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당시 아프리카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정도의 대단한 업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업적을 인정받은 김 박사는 외국인 최초로 아프리카 명예 추장에 2번 추대됐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에 5번 올랐다.

심지어 나이지리아의 동전에는 지금도 김 박사가 개발한 옥수수인 ‘오바 슈퍼 1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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