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보다 IQ가 두 배 높았던 천재가 자신의 능력을 돈 세는 알바에 사용한 이유

  						  
 								 

우리는 종종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다. 그렇지만 천재로 태어났으나 비극적인 삶은 산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자.

아이큐 300의 천재

189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남자 윌리엄 제임스 시디스는 아이큐가 무려 300에 가까웠다. 이 300이라는 수치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의 아이큐였던 160을 훨씬 뛰어넘는 기록이다.

시디스는 그런 아이큐에 걸맞게 어렸을 적부터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뉴욕 타임스를 읽기 시작했으며 남들은 말도 잘 못하는 2살 때 라틴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4살 때는 의학교수들도 어려워하는 해부학에 관련한 논문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고 6살 때는 4개국어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를 습득했다.

심지어 8살 때는 세상에 있는 언어들에 싫증이 났는지 자신만의 언어 체계인 벤더굿이라는 인공언어를 만들어냈다.

11살에 하버드 입학

이런 재능으로 인해 그는 8살 때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인 MIT와 하버드 의대 입학시험에 동시 합격했다. 그러나 8살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고, 결국 3년 후 11살이 되어서야 하버드에 진학할 수 있었다.

최연소 나이에 하버드에 입학한 시디스의 소식에 당시 전 세계 언론들은 역대급 천재가 나왔다며 일제히 보도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런 시디스의 행보에 전 세계인들이 주목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하버드 대학교 안에서 시디스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하버드 안에서 시디스를 질투하는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기와 질투

결국 시디스는 어린 나이에 하버드에 입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질투의 대상이 되어 학생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는 17살 때 학생 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되기도 했지만, 그 뒤에는 교수들한테까지 질투를 받았다.

결국 학생들과 교수들의 조롱, 그리고 사회의 무거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그는 하버드 교수직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사회에 큰 환멸을 느낀 그는 아예 대중으로부터 숨어 지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토록 재능을 보였던 수학과 과학을 모두 내려놓고 계속 이름을 바꿔가며 다른 지역으로 도망 다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시디스

그러다가 1924년, 뉴욕 언론사의 한 기자가 월스트리트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시디스를 찾아냈다.

당시 시디스는 1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금고 안의 지폐를 계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미국의 언론사들은 ‘천재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시디스를 조롱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시디스는 기사를 쓴 언론사들을 개인 정보 침해라는 이유로 고소하고 약 7년 동안 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시디스가 이미 너무 유명해서 공인에 가깝다는 이유로 그의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극적인 최후

결국 시디스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은둔 생활을 하다가 46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천재가 사회의 질투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안타까운 케이스다. 여러 미디어들은 현재까지도 시디스를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디스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서 과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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