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라 불렸던 여자…

2015년 July 14일   admin_pok 에디터

마리안느 페이스풀 (Marianne Faithfull)
Marianne Evelyn Faithfull(born 29 December 1946)

 

영국의 1960년대~1970년대 가수이자,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가 스타일 모델을 삼을 만큼 패션 아이콘이자,
롤링스톤즈 믹 재거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마리안느 페이스풀.

 

하지만 그녀에게 늘 따랐던 수식어는

 

‘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
‘퇴폐의 요정’
‘더러운 소녀’

 

순진한 얼굴과 해맑은 미소를 가진 한 소녀가 어떻게
퇴폐와 타락의 아이콘이 되버렸을까?

 

마리안느의 어린 시절은 매우 유복했다.

아버지는 런던 대학의 교수였으며, 대대로 오스트리아 귀족 혈통을 이어받은 명문가였다.
유복하고, 엄격한 집안의 전통을 따라 마리안느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였고, 착실하게 ‘좋은 신붓감’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름 방학, 친구와 함께 당시 무명이었던 롤링스톤즈의 론칭 파티에 놀러가게 되고,

이곳에서 마리안느를 본 롤링스톤즈의 매니저는 순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섹시한 마리안느의 매력에 홀려 당장 가수 계약을 맺기를 원한다.

평소 학교 근처 카페에서 가끔 노래를 하기도 했던 마리안느도 찬성하여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첫 앨범은 매우 대성공이였다.

그녀는 학교에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그 길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소녀같은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가수 생활을 시작하며 만나게 된 동료 가수와 결혼도 하게되고
남자 아이도 한 명 낳아 순탄한 삶을 살게되나 했더니,

 

그녀 인생을 순식간에 소용돌이처럼 몰아버린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나쁜 남자의 대표적 아이콘이였던,

롤링스톤즈의 보컬믹 재거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마리안느는 믹 재거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항상 롤링스톤즈의 투어를 따라다니고, 늘 믹 재거와 붙어있으며

최고의 록스타와 걸맞는 멋진 여자친구 역할을 하게 되고, 단숨에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화려한 삶이 시작되었고, 마리안느는 여성들의 질투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따라하고 싶은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록스타들의 삶 뒤에는 늘 마약이 함께했고, 자연스럽게 마리안느도 그들의 난잡한 사생활에 물들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히피 문화와 성해방운동에 영향받은 당시 젊은이들은 술,담배,마약,섹스에 중독되었고 마리안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마리화나에 손댔던 마리안느는 모르핀, 헤로인,코카인과 같은 강도 높은 마약까지 손대며
오히려 마약을 먼저 하던 밴드 멤버들 보다 더 강한 마약 중독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1967년, 사건이 터진다.

 

‘레즈렌드 별장 사건’ 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마리안느를 단숨에 추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롤링스톤즈 멤버 키스 리차드의 별장 파티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충격적인 현장을 보게 된다.

 

술,담배 그리고 마약에 찌든 파티 현장, 9명의 파티원 중 여자는 마리안느 페이스풀 단 한 명.

 

게다가 그녀는 알몸상태였고, 경찰이 출두한 후, 간신히 카페트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모조리 언론에 보도되었고,

 

마리안느의 이미지는 단 숨에 추락했다.

게다가 당시 상황을 과장하는 성적인 루머들(너무 더러워서 여기 쓸 수 없을 정도)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다.

마리안느는 ‘순수한 소녀’에서 ‘더러운 소녀’의 아이콘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라고 불렀다.

 

그렇게 타락한 소녀는, 또 한번의 아픔을 겪게 된다

믹 재거의 아이를 유산하게 된 것.

유일한 희망이였던 아이마저 잃게되자, 삶의 의욕을 잃은 마리안느는 자살 시도를 한다.

이 후

그녀는 더욱 마약에 빠지게 되고, 그녀의 마약 중독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마약은 그녀를 인생의 끝으로 몰아냈다.

 

마약과 담배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를 점점 굵어졌고, 갈라졌고 거칠어졌다.
‘밀리언 시가렛 보이스’라고 불릴 만큼, 예전의 청아한 목소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 모든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함께했던, 마약과 명성의 세계로 그녀를 침몰시킨
연인, 믹 재거와 이별한다.

 

“나는 스스로보다 더욱 어른인 양 행동했지. 믹 재거는 마치 날 구원해주러 온 것처럼 보였어.”

 

다시 마리안느는 재기를 꿈꾸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영화에 출현하기도 한다.

 

당시 최고 미남 배우였던 알랭 들롱과의 영화 출현으로 ‘세기의 연인’이란 수식을 얻고, 재기하나 싶었으나

 

그때뿐이였다.

이미 완벽한 마약중독자가 되버린 마리안느는 스스로를 ‘dirty little girl’ 이라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약과 담배가 상징인 여가수’란 불명예를 얻으며,

 

결국,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한 때 아이콘이였던 소녀 스타는 마약에 찌들어 스스로 방랑하며 런던 거리의 노숙자로 2년간 생활하게 된다.

 

잘 나가던 소녀가 마약과 명성에 빠져 타락하는 인생.

마치 ‘팩토리 걸’의 ‘에디 세즈윅’과 닮은 마리안느 페이스풀.

 

하지만 다른 점은. 에디 세즈윅은 죽었지만, 결국 그녀는 살아남았다.

 

비록 나이들고, 예전의 미모는 사라졌고, 마약과 담배에 찌든 허스키 목소리와마약 중독까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곳이 없던 마리안느 페이스풀.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과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이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재활을 도왔다.

 

결국 마리안느는 자신의 인생을 얼룩지게 한 지긋지긋한 마약과의 이별에 성공한다.

재활을 준비하며 유방암 판정을 받기도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모든 항암 치료를 다 이겨내며, 재기에 노력했다.

 

결국 그녀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영화 배우로서 다시 컴백하게 된다.

 

2007년 영화 ‘이리나 팜’에서 손자의 수술비를 위해 창녀가 된 할머니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은 그녀, 화려했지만 순식간에 타락했던 그녀의 과거와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자랑스러워. 이건 더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
나로서는 저절로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였으니까.”

 

 

” 내 삶은 내 삶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살고 있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