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이 체인점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

2025년 3월 4일   admin_pok 에디터

“성심당, 한국의 대표 빵집이 되기까지”

대전의 명물 성심당, 이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집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56년 대전에서 시작된 성심당은 창업주 고(故) 임길순, 고(故) 한순덕 부부의 노력과 헌신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대전이 창업지로 선택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 피난길에서 대전에 정착한 창업자 부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 작전’으로 피난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부부는 열차 고장으로 인해 대전에 강제 정착하게 되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빵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성심당이 탄생했다. 당시 대흥동 성당에서 구호미를 지원받았지만, 하루 2포대로는 많은 사람을 먹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창업주 부부는 빵을 만들어 2개는 팔고, 1개는 기부하는 방식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보다 나눔이 우선이었던 빵집”

보통 장사는 팔리는 만큼만 만들어야 하지만, 성심당은 달랐다. 이윤보다는 나눔을 우선하는 운영 방식을 택했고, 이 덕분에 지역 사회에서 깊은 신뢰를 얻었다. 성심당의 대표 메뉴인 ‘튀김소보로’ 또한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한창 장사가 어려울 때, 버려지는 빵이 아까워 기름에 튀겨봤더니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면서 성심당의 대표 상품이 되었다.

“형제 경영 갈등과 사업 다각화의 실패”

창업자의 두 아들, 장남 임영진과 차남 임기석은 성심당을 두고 각자의 길을 걸었다. 장남은 전통을 지키며 본점 위주의 운영을 고수했고, 차남은 프랜차이즈 확장과 사업 다각화에 도전했다. 결국 1995년 차남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하며 성심당의 체인점을 늘렸으나, IMF 경제 위기와 무리한 투자로 사업이 실패하며 성심당의 명성에 타격을 입었다.

성심당 본점은 당시 망해가는 체인점들을 살리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았다. 차남은 미국으로 떠났고, 이후 미국에서도 성심당을 운영하려 했으나 실패를 겪었다.

“대전의 명물에서 전국적인 빵집으로”

성심당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본점 위주의 운영 전략을 유지하며 다시 한번 도약했다. 전국 빵집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명성을 되찾았고, 최근에는 KTX 역사 내에서도 성심당 빵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를 확대했다. 이제 성심당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대전의 자랑,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빵집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