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가 한석봉 글씨체 대놓고 깔 수 있었던 이유

2025년 3월 20일   admin_pok 에디터

“조선 최고 서예가 한석봉, 선조에게 까인 이유?”
왕도 감히 평가하는 글씨체, 그 배경은?

조선 시대 최고의 서예가로 손꼽히는 한석봉(韓石峯). 하지만 그의 글씨를 두고 조선의 국왕 선조가 “액자는 훌륭하지만, 초서와 해서가 부족하다”라고 평가하며 단점을 지적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한석봉은 명필로 이름을 떨쳤고, 그의 글씨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선조는 감히 그를 깎아내릴 수 있었을까?

한석봉의 글씨체는 단정하고 정교한 필치로 유명하다. 특히 궁중에서 사용하는 액자용 글씨(액자, 額字)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정작 왕이 보기에 그의 초서와 해서(한자의 정자체)에서는 깊이가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다. 선조의 이 발언이 단순한 트집이었을까?

사실 선조는 스스로 명필로 유명한 왕이었다. 실제로 그의 친필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왕 자신이 서예에 조예가 깊었기에, 한석봉의 글씨에 대한 평가를 내릴 정도의 안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 문인들에게 글씨체는 단순한 서예를 넘어 학문과 교양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뛰어난 서예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이 있는 필력을 담아야 했다. 하지만 한석봉의 글씨는 기계적으로 정교했을 뿐, 감성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석봉의 명성은 시대를 초월했다. 오늘날까지 그의 글씨는 각종 문서와 서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서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가 한석봉을 대놓고 평가절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왕이 곧 문화의 중심이었던 조선 시대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조선 시대 왕권과 문화 권력이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한석봉이 아무리 명필이라 해도 왕의 권위를 넘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