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잔만 마셔라” 명 받들어 만든 ‘대형 술잔’…조선 최대 주당의 반전 스케일
조선시대,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문인 정철은 사실 ‘술’로도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다. 당시 국왕이었던 선조는 그의 지나친 음주를 못마땅하게 여겨, 일종의 ‘금주령’을 내린다. 그 내용은 다소 간단했다. “내가 은으로 만든 술잔을 하사하겠다. 이 잔으로 하루 세 잔만 마시거라.” 고위 관리로서 체통을 지키라던 선조의 ‘정중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전설이 시작된다. 정철은 그 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술잔을 엄청난 크기로 제작한다. 두 손으로 퍼야 할 정도의 크기. 거의 밥공기, 아니 대야 수준에 가까운 은제 주발. 선조는 “세 잔만 마시라” 했고, 정철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잔의 크기’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결국 그는 하루 세 잔만 마시면서도, 각 잔에 막걸리 한 말은 족히 담을 수 있었을 이 어마무시한 ‘술잔’ 덕에 계속해서 술을 퍼마셨다. 그의 “하루 세 잔 맞췄습니다잉~ 틀린 말 안 했당께~”라는 정신승리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그 은 술잔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실제로 전시 중이다.
이 에피소드는 후대에도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법”의 상징이 되었고, ‘정철의 술잔’은 조선판 ‘꼼수의 미학’으로 기록되고 있다.
댓글 반응도 뜨거웠다. “이게 바로 음주에 진심인 자의 레전드 대응”, “그 술잔 설계도 지금 있어야 한다”, “하사품 퀘스트를 이렇게 통쾌하게 깬 사람 처음 본다” 등 폭소와 감탄이 뒤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한편, 정철의 이 ‘주당 일화’는 관동별곡이나 사미인곡처럼 그가 남긴 문학 작품 뒤에 가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그 역시 조선시대 인간미 넘치는 ‘사람 냄새 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철은 결국 왕의 뜻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술’을 지켰다. 유쾌하고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