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일하는 노예출신에서 난세의 왕이 되다

2017년 August 1일   admin_pok 에디터

소개할 인물은 중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좀 생소할수도있는 석륵 이라는 인물이야

 

석륵(石勒, 274년 ~ 333년, 재위: 319년 ~ 333년) 자는 세룡이야

석륵은 갈족출신으로 어릴적 한족 지주 밑에서 하루동일 밭에서 일하는 노예였어

하루종일 일하였지만 한족지주였던 곽경과 영구 두 사람은 석륵이 비상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잘해주긴 했어

어느세 석륵은 14세가 되었고 짐꾼으로 열심히 살고있었어 때마침 살고있던 병주에서 기근이발생해서 석륵을 포함한 호인들이 이떄다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어 조선시대 추노처럼 도망간 호인들을 잡아 비싸게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석륵은 짐꾼하기 전에 고용주였던 영구에게로 도망갔고

영구는 석륵을 숨겨주었어 후에 다른곳으로 이동중이였던 석륵은 병주자사 사마등의 군사에게 사로잡히고 기주로 팔려나가게 되었어

거기서 도 힘들게 노동하였다가 인신매매로 또 팔려나가 팔려나가는것에도 개빡친 석륵이 알고지냈던 몇명과 모아 무기를만들고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을 하게된다

 

그리고 때는

팔왕의 난

너무 개막장이라 요약은 했다

  1. 진 혜제의 부인인 가남풍은 양준을 제거하기 위해 여남왕 량 과 초왕 위 회남왕 윤등 세명의 왕에게 밀서를 보냈고 여남왕 량은 거절해
  2. 2. 결국 가남풍에 의해 양준과 양씨일족이 도륙당하고 양 황후는 며느리인 가남풍에게 살려달려고했으나 결국 죽임을당해
  3. 3. 초왕 위는 양준토벌에 공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지나치자 여남왕 량. 태보 위관은 병권을 빼앗은뒤 봉지로 돌아가도록 조치.
  4. 초왕 위는 이에 분노해 가남풍에게 이들이 모반한다고 고발하고 가남풍은. 전에 위관이 무제앞에서 혜제가 보위를 잇기 어렵다는 말에 원한을 품고 조명을 내려 여남왕 량과 위관 삼족을 멸족해 가황후는 바로 초왕 위에게 모반죄를 뒤집어씌어 삼족을멸해
  5. 4. 가황후 일파가 대권을 장악하고 그 일파인 장화와 배위등이 정사를 돌보자 근 10년간 별다른 일이 없었어
  6. 5. 가황후는 태자 사마휼을 폐하고 사사하자 조왕 륜과 양왕 동 제왕 경이 거병하여 가씨일족을 주살해
    (이때 석숭은 가씨일족인 가밀과 친했고 결국 화를 입게 돼)
  7. 6. 조왕 륜은 휘하참모인 손수에 꼭두각시였고 손수의 말대로 찬역을 도모해. 이에 분노한 회남왕 윤이 거병하였으나 제거당해
  8. 7. 조왕 륜은 진 혜제를 폐하고 찬역을 했으나 제왕 경 하간왕 옹 상산왕 예가 거병해 조왕 륜과 손수일파를 제거
  9. 8. 제왕 경이 권력을 장악하고 하간왕 옹에게 밀조를 받은 장사왕 예가 제왕 경을 죽여 . 장사왕 예와 이복형제였던 성도왕 영은
    장사왕 예 세력이 커지는걸 우려해 하간왕 옹과 손을잡고 장사왕 예를 제거
  10. 9. 성도왕 영은 황태자인 사마담을 청하왕으로 강등하고 본인이 황태자가 되 이후 멋대로 일을 처리하자
    동해왕 월과 동생 동영공이 폐위된 사마담의 복위를 주장하여 거병해
  11. 10. 결국 하간왕 옹 성도왕 영은 동해왕 월에게 패해 죽임을당하고 진 혜제가 이용가치가 없다생각하고 독살하
    고 25번째 동생인 사마치(진 회제)를 보위에올리고. 청하왕 담을 제거해
  12. 11 . 마지막 승자인 동해왕 월은 병사했고 그 휘하는 시신을 봉지은 동해로 옮기는 도중 갈족의 우두머리인 석륵에게 도륙을 당함

이 팔왕의 난으로 중원으로 본격적으로 이민족이 대거 유입하게 되는데

 

석륵은 흉노부족을 이끌고 있는 유연에게로 가서 큰 활약을 하게 돼 석륵은 이전에 자기를 팔아먹은 사마등을 조지는데 성공함

 

이후 석륵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

장빈을 등용하면서 석륵의 세력은 커지기 시작했어. 이 장빈은 석륵에게 장량같은 존재였어

한편 흉노씨에 전조의 왕이였던 유총이 외척 근준에게 죽는일이 발생해

 

장안에 주둔하고 있던 상국 유요는 석륵을 조왕으로 봉하고 근준 토벌을 하기위해 밀서를 보내고 둘이연합해 전조의 수도였던 평양을 포위했어

(조왕으로 봉한지 얼마안되서 장빈이 세상을떠남, 이때 석륵은 “어떻게 나를 두고 이처럼 일찍 우후를 데려갈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애통했어)

유요는 근준에게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하였지만 근준은 이미 유총을 죽이면서 유씨종실을 대거 멸족한 상태여서 항복을안했어.

하지만 동생이 결국 근준을 죽이고 유요에게 투항했어 근준에 말대로 유요는 항복한 근준형제와 근씨를 멸족시켜버렸어

석륵은 근준형제가 멀리있었던 유요에게 항복해서 빡쳐있었고 결국 유요와 석륵은 갈라서게 돼

석륵과 유요는 5호16국시대에서 라이벌이면서 과거에 같이 공을세운 동료였지

석륵의 후조 유요의 전조는 전쟁을하며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버렸고 결국 석륵이 유요를 사로잡고 그 자손에게 항복을 권유하지만 유요는 거부하면서 죽고말아 이후 석륵은 전조를 멸망시키고 후조의 영토를 넓히게 돼

이후 석륵은 세력을 넓히고 60세에 죽고말았어

나름 갈족출신이지만 남북조 시대의 제왕이라고 생각하고 . 문맹이였으나 역사내용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혼란기에 백성들에 부담을 줄이고 조세를 낮췄어 또한 인재 육성과 교육 제도에 신경을 많이 쓰고 한족을 멸시하지도 않고 등용했어

하지만 자식농사는 망함

출처 – FM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