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들의 비참한 최후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외교부 장관 -18분
빌헬름 카이텔, 육군원수 – 24분
에른스트 칼텐부루너, 친위대 대장 – 13분
알프레드 로젠베르크, 동부전선 점령지 장관 – 10분
한스 프랑크, 폴란드 총독 – 10.5분
빌헬름 프리크, 내무부 장관 – 12분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반 유대주의 언론인 – 14분
프리츠 자우켈, 제국 전권 노동 감독관 – 14분
알프레드 요들, 육군 대장 – 16분
아르투어 폰 자이스-잉크바르트,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총독 – 기록 없음
위의 기록들은 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나치전범들과 교수형으로 줄에 매달려있던 시간을 기록한것입니다.
위에 열명의 전범 중 두명을 밑줄을 써놓았는데요, 이 두명은 저 시간동안 산채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보통 교수형을 당하면 몸의 무게를 못이기고 낙하 즉시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줄의 길이가 잘못되어서 긴 시간동안 죽지못하고 매달려있어야 했습니다.
우선 위의 사진은 카이텔 독일 국방군 원수로 독일군 총사령관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국방군 소속이면서도 친 나치계열 장교였고 히틀러에게 반대되는 의견을 거의 내놓지 않아 동료 장군들 사이에서 아첨꾼 (Lakeitel) 이라는 경멸섞인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전후 체포되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고 과거 히믈러 휘하의 친위대가 점령지에서 전쟁범죄를 벌이는것을 알고도 방관한 죄 등으로 기소되어 유죄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카이텔은 군인으로서 총살형을 요구했으나 무시됩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의 카이텔 (앞줄 오른쪽)
교수형 후 카이텔의 시신
카이텔의 시신을 보면 교수형을 당했음에도 온 얼굴이 피투성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24분동안 죽지 못하고 있다가 온 얼굴에 피를 쏟고 죽어서라고 합니다.
카이텔을 사형시킬때 바로 죽지않자 줄을 2번 더 갈아서 낙하시켰다는 말도 있고 카이텔이 신음할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건 아주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어갔다는거겠죠. 나치 거물에 어울리는 최후이긴 하나 나치 5괴수중 (히틀러, 괴링, 히믈러, 괴벨스. 카이텔) 네명은 자살로 편하게 죽은걸보면 카이텔은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연설하는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그리고 바로 죽지 못하고 14분간 매달려있던 율리우스 슈트라이허는 나치 언론인으로서 반 유대주의 보급을 위해 대중지 데어 슈튀르머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서 유대인 핍박과 정치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슈트라이허는 개전초기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힘을 상실하고 전쟁범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반 유대주의를 전국에 퍼뜨린 장본인으로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의 시신
슈트라이허는 사형선고를 받고 재판관들과 연합군을 비판하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알려져있고, 형 집행전에 나치식 경례를 하며 하일 히틀러를 외쳤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사형 집행인이 일부러 줄 길이를 잘못 조절했다는 말도 있으나 진실은 사형 집행인만 알것입니다.
출처 – 인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