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역사적 상황부터 정리하면
1. 때는 1636년 안일한 조정과 무능력한 왕 ‘인조’로 인해 일어난 ‘병자호란’ 이후, 13년뒤인 1649년 유능했던 첫째인 ‘소현세자’가 죽고 차남이던 ‘효종’이 왕위에 올랐다.
2. 이후 1654년 ‘청나라’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병자호란’ 이후로 속국이 된 조선에게 지원 병력을 보낼것을 (사실상 징병) 요구했다.
3. 이 ‘나선정벌 (여기서 ‘나선’은 그 당시 러시아를 뜻하는 한자식 표기)’에서 청나라 군대가 아닌 ‘조총’을 앞세워 활약한 ‘조선군’에 의해 ‘러시아 군’이 대패를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4. 이러한 결과들로부터 ‘효종’은 ‘오랑캐였던 청나라를 정벌하고 과거 아버지로 모시던 명나라를 돕자’ 라고 하는 ‘북벌론’을 제시하는데…..
당시 조선 조정은 소현세자의 아들이 적장자임으로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하지만, 소현세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던 인조가 차남인 효종을 왕위에 올리게 된다.
이러한 인조에게 빚(?)이 있는 효종은 항상 적장자 원칙을 깨고 왕이 됐다는 컴플렉스가 심하게 있었다.
하지만 병자호란의 패배로 소현세자와 함께 당시 왕자이던 효종은 청나라의 수도인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 명나라는 이미 약해져 멸망 직전이였고 청나라는 매우 강력하다는 청 국내의 상황을 매우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조선의 초기부터 모토이자 메인 핵심이였던 명나라를 숭배하고 오랑캐(청)을 배척해야 한다는 숭명반청은 사실상 병자호란때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3번 절을 하는 삼전도 사건으로 깨져있었다.
만약 조선이 병자호란 이후 완전히 청나라에게 넘어가고 명나라를 배척한다면 조선 국민들은 나라조차 저러는데 우리도 주인을 바꿀 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조선의 지배층들은 예상했다.
결국 북벌론의 핵심은 효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명분과 조선의 지배층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불과했을 뿐.
50만명이 넘게 인질로 잡혀가 청의 노리개로 전락해버린 조선의 국민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아주 이기적인 아이디어였을뿐이였다.
출처 – 다음 이종 카페 / 사진 : KBS1 역사저널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