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를 모시는 ‘동묘’가 우리나라에 있는 이유

  						  
 								 

서울의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지나가는 동묘.

사실 ‘동묘’라 함은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동관왕묘’의 줄임말이다.

이름으로 어떤 ‘묘’라는 정도는 유추할 수 있겠으나 이 ‘동묘’의 본 이름이 ‘동관왕묘(東關王廟)’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관왕은 누굴까?

‘삼국지’로 유명한 중국 촉나라 시대의 장수, 관우가 바로 ‘관왕’이라 불렸다.

‘동관왕묘’라 함은 ‘동쪽에 위치한 관우의 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동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보냈던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사실상 명나라의 ‘명령’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동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601년에 완성되었다. 서울에는 동.서.남.북 4곳에 지어졌으나 지금은 동쪽편에 지어진 동묘만이 남아 있다. 관우와 그의 최측근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동묘’가 단순히 명령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꿈 이야기에는 ‘동묘’가 지어진 이유가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임진왜란때 왜구가 처들어 와서 선조임금이 서울을 버리고 의주까지 몽진을 갔다.

그러던 중 선조가 잠을 자는 꿈속에서 삼국지의 관운장이 나타났다.

관운장이 선조에게

” 아우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형님에게 간청하여서 형님이 도와 주실것이다”

라고 말했고

선조가 꿈속에서 관운장에게 어떻게 제가 관제의 동생이 됩니까? 하고 물으니

“우리 삼형제가 환생을 하여 유비형님은 지금의 명나라 황제가 되었고 아우 장비, 자네는 조선의 왕이 되었네. 나는 살아 생전에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환생을 아직 못하고 있네. 그러나 이생에 자네의 나라가 어려움이 닥쳤길래 내가 형님의 꿈에 나타나 자네를 도우라고 간청해 두었으니 자네를 도우러 명군이 올 것일세”

라고 선조의 꿈에 나타나서 이야기를 했다.

그후에 명군이 조선을 도우러 왔다.

조명 연합군은 합심하여 일본군이 점령한 전략적 요충지인 평양성 탈환을 위해 수차례 공격하였으나 번번히 사상자만 내고 물러날수 밖에 없었고 다시 4차 평양성 탈환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불리하던 차에 갑자기 하늘에서 천병의 무리를 이끈 관운장이 내려와서 일본군들을 도륙내기 시작하였고, 이 기세로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했다.

평양성 탈환은 육상에서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고, 그후 선조의 명으로 관우의 사당인 동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정사에서는 관우에 대하여 나오지 않지만, 이는 동관묘가 지어진 또 다른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