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힙합’이 큰 인기를 끌면서 언어유희로 상대와 겨루는 ‘디스전’이 유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힙합’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기가 막힌 언어유희로 상대와 설전을 벌이는 말싸움꾼이 우리나라에 존재했다.
그는 바로 김삿갓이다.
■김삿갓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립(金笠)이다.
김삿갓이란 이름은 그가 인생의 대부분을 삿갓을 쓰고 다니며 방랑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가지 특이한건 안동 김씨, 그 중에서도 성골인 노론 장동 김씨 일가였다.
■ 왜 ‘삿갓’인가?
그가 항상 ‘삿갓’을 쓰고다닌 이유는 2가지 설로 나뉜다.
첫번째 설
22세까지는 그냥 이곳저곳 다니는 방랑생활을 하였으나, 어느 날부터 자신은 더 이상 하늘을 볼 낯짝이 없다는 이유로 몸 전체가 그늘지는 거대한 삿갓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김병연은 김삿갓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름보단 김삿갓(김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 설
당시 삿갓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이었다는 것이다. 낚시하던 노인네가 주로 삿갓을 쓰고 낚시를 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김삿갓의 삿갓은 민중과 함께하려는 그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음담패설, 섹드립과 디스전의 원조
세상을 떠날때까지 그야말로 백두산을 제외한 조선팔도 이곳 저곳을 누볐으며, 때로는 한곳에 머물며 훈장 노릇을 하여 후학을 기르고 숙식을 해결하였다. 그는 높은 문장으로 사대부들의 악덕과 사회에 존재하던 폐해 따위를 비판하여 듣는이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격조높은 노래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노래로 풀어내어 불렀기 때문에 그는 명망이 있었다한다.
김삿갓 시의 특징은 ‘뼈대가 있는 언어유희’인데, 그의 시와 관련된 몇가지 일화를 보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다.
마음쓰는 폭이 좁은 친구의 파자를 풀어서 파자로 반박을 한 일화.
김삿갓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안주인이 “人良卜一(인량복일)하오리까?”하고 묻자
그 친구가 “月月山山(월월산산)하거든.”하고 답했다.
그러자 김삿갓이 화를 내며
“丁口竹夭(정구죽요)로구나 이 亞心土白(아심토백)아.”
하고 가 버렸다.
이를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人良 卜一 = 食(밥 식) + 上(윗 상) = 밥을 올리다 아니면 食(밥 식) + 具 (갖출 구) = 밥을 내놓다
月月 山山 = 朋(벗 붕) + 出(날 출) = 친구가 나가다
丁口 竹夭(혹은 天) = 可(옳을 가) + 笑(웃을 소) = 가소롭다. 즉, 우습다.
亞心 土白 = 惡(나쁠 악) + 者(놈 자) = 나쁜 놈
犬者 禾重 = 猪(돼지 저) + 種(씨 종) = 돼지 새끼
따라서, 아래와 같은 내용이 된다.
김삿갓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안주인이 “식사 올리오리까?”하고 묻자
그 친구가 “저 친구가 가거든.”하고 답했다.
그러자 김삿갓이 화를 내며
“가소롭구나 이 나쁜 자식(혹은 돼지 새끼)아.”
하고 가 버렸다.
어느 서당에서 걸음을 멈추었는데 제대로 대접도 해주지 않은채 야박하게 문전박대하니 분기탱천하여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시.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내 일찍이 서당인줄은 알았지만
방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되고
선생은 와서 인사조차 않는구나.
시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이 시를 한자 음대로 읽으면 이렇다.
서당내조지요,
방중개존물이라.
생도제미십이고.
선생내불알이라.
그리고 방랑중 돈이 떨어진 김삿갓은 임시로 글을 가르쳐 돈을 벌려 했는데, 자기에게 와서 배우라는 의미로
自知면 晩知고 補知면 早知다
혼자서 알려 하면 늦게 알게되고 도움받아 알려 하면 빨리 알게된다.
라고 써 붙였다. 내용만 본다면 홍보용으로 적합한 내용이지만 한자의 음만 읽으면,
自知면 晩知고 補知면 早知다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다
라는 저속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시 중에는 시(是)와 비(非) 단 두글자로 지은 시도 있다.
제목도 시시비비가(是是非非歌).
허황된 이론을 가지고 옳다 아니다 하며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부류를 풍자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으며,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음이 아니다.
그른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이 그른 것이 아니며,
옳다는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함이 도리어 이 그른 것을 옳다 함이다.
김삿갓. 그는 저급하고 우스운 시만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양반의 신분으로 양반을 바판하고, 시대를 비판하며 민중의 정서를 지닌 이었다.
더하여 그의 시는 조선시대의 욕과 비속어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한데, 오늘날도 그렇지만 욕이나 비속어가 기록된 기록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과거의 비속어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끝으로 그가 남긴 유언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는 외지인 전라도 동복현(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그나마 거지 꼴이 아닌 잘 알던 이 집에서 누워 치료를 받다가 방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안 초시, 춥구려. 이제 잠을 자야겠으니 불을 꺼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