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을 도운 몽골 제국 개국 공신 ‘사준사구’

2017년 August 16일   admin_pok 에디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황제국을 건설한 정복의 신, 칭기즈칸.

그가 이런 놀라운 업적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도운 당대 최고의 문무를 겸비한 충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준사구 (四駿四狗)

칭기즈 칸을 도와 몽골 제국을 건국한 8명의 개국공신 장수들을 이르는 말.

사준은 내정과 전략에서 활동한 인물이며, 사구는 전투에서 공훈을 발휘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몽골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원조 비사》(元朝秘史)에 나온 ‘4마리의 준마, 4마리의 충견’(dörben külü’üd, dörben noγas)에서 유래한다.

여기에 주르체디, 쿠일다르의 이첨(二尖. 두 개의 창)을 더해서 칭기즈 칸 10 장수(10훈)이라 하기도 한다.

사구 사준이라고도 하며 이 명칭은 몽골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원조 비사에 나오는 4마리의 준마와 4마리의 충견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말과 개에 비유될 만큼 말할 필요도 없이 칭기즈 칸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수많은 공을 세운 인물들이며 그만큼 몽골 제국 내에서 그들의 위치는 칭기즈 칸 외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사준은 주로 보좌를 하거나 전쟁에서 전략 수립하는 것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며, 사구는 전쟁에 나서서 용맹을 떨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준(四駿)

티라운

소년시대의 징기즈 칸이 타이치우토족으로부터 쫓겼을 때, 그를 숨겨 주고 신뢰를 얻었다.

1201년에 칭기즈 칸이 메르키트족과 쿠이텐에서 전쟁을 벌일 때 그의 부하가 되어 용맹을 떨쳤는데 전투 중에 말에서 떨어지자 적들이 덤벼들었고 이에 창을 고쳐 잡고 적의 기병과 맞서 싸워 칭기즈 칸이 이를 보고 감탄하였다.

이는 초원에서의 전투에서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

자손은 원조 4대 명족의 하나로서 권세를 누렸다.

보로클

전장에서 발견되어 징기즈 칸의 어머니가 키웠다.

빈사의 오고타이를 전장에서 구출하는 등의 공을 세웠고 외교능력이 뛰어났다.

케레이트군과의 전쟁을 벌인 카라 탈지트 전투에서 빈사 상태에 빠진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인오고타이 칸의 상처를 입으로 피를 빨아 치유한 뒤 말에 태워 구출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받아 전투 이상으로 중요했던 부케울과 바우르치에 임명되었고 이후에는 음식을 관리하는 장군에 임명되었다.

보오르추

칭기즈 칸과는 그가 젊은 시절에 말을 도둑맞았을 때 그에게 말을 빌려주어 추적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신하가 되었다. 신하이자 벗.

칭기즈 칸을 여러번 위기에서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12명의 남자가 칭기즈 칸을 습격하여 그가 입에 화살을 맞고 의식을 잃자 물을 가져와 입을 씻어주었는데 목구멍에서 피가 나온 후에야 칭기즈 칸이 의식을 되찾고 12명의 남자들을 향해 돌진하자 그들이 크게 놀라 산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칭기즈 칸과는 메르키트 부족의 습격, 타타르 부족, 케레이트 부족과의 전쟁 때도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여 창업에 몽골 제국의 창업에 공헌하였으며 이 때문에 다르한의 자격이 부격되어알타이 산맥 방면의 몽골군을 관할하는 우익의 만호장에 임명되었다.

칭기즈 칸의 경호를 맡고 있어 그가 경비를 서지 않는 한 칭기즈 칸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에 원조비사에서는 칭기즈 칸이 여러번 분노를 참지 못할때마다 그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무칼리

원래는 자무카의 부하였으나 칭기즈칸에 귀순 1213년에 칭기즈 칸이 직접 금나라 2차 정벌에 참전하면서 금나라의 65만의 병력을 격파하자 군사들을 지휘하여 제남, 장안, 요서, 요동 등의 금나라의 화북 지방의 주요 영토를 함락하였다.

이 공을 인정받아 칭기즈 칸으로부터 화북 일대를 통치권을 받아 무칼리 국왕가를 이루게 되며

몽골의 다섯 부족과 투항한 한인으로 이루어진 혼성군을 이끌고 금나라 공략을 하였다.

■사구 (四狗)

중국에서 유럽까지 누빈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

몽골 제국의 장군으로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인 사준사구 중 한 명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켰으며, 역사에 정확히 기록된 것만 65번의 회전에서 승리했다.

회전이란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모 아니면 도’식의 한타 총력 대결하는 전투를 말한다.

보통 회전은 그 특성상 국운을 건 모험인 때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도 일생 5번 이상의 회전을 경험하기 힘든데 수부타이는 평생 그가 만난 금나라, 송나라, 서하, 각 유목 부족 여러 국가,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의 수십 개 국가, 러시아,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조지아, 아르메니아의 군대를 모조리 격파했다.

제베

몽골 제국의 장수로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인 사준사구의 한 명.

제베란 호칭은 화살이란 뜻으로 칭기즈 칸이 하사한 이름이며 이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활의 명수였다.

원래는 쟈무카의 신하로서 13익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어도 위엄을 잃지 않는 점이 높게 평가되어 징기즈 칸의 신하가 되었다.

그 뒤 여러 전장에서 공을 세워 만호장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며 중앙아시아 원정 당시에는 수부타이와 함께 캅카스 산맥을 넘어 남러시아에 침공하여 크림 반도까지 찍고 돌아오면서 킵차크인과 러시아 공국 연합군을 박살내고 돌아왔다.

쿠빌라이 칸

칭기즈 칸의 손자.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인 툴루이의 넷째 아들이자 몽케 칸의 동생.

통일 몽골 제국의 마지막 칸이자 원나라의 시조.

쿠빌라이 칸의 치세에 몽골족의 전체 판도는 역사상 최대규모에 달했다.

무려 전세계 인간이 거주 가능한 지역의 1/5.

몽골 제국의 대규모 원정은 쿠빌라이 칸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추진력이 없어졌다.

몽고 통일 후에 전공에 대한 포상으로 군정책임자의 지위가 하사되었다.

젤메

전장에서 부상당한 징기즈 칸을 위해 적진을 뛰어다니며 물을 탈취하여 철야로 간병했고 징기즈 칸은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징기즈칸은 젤메가 9번의 대죄를 지은다 해도 모두 용서해주는 특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