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모두 독상을 받았다.
아이들끼리는 둥근 소반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기도 했지만, 어른들은 모두 작은 소반에 밥상을 받았다.
아이와 어른이 겸상을 할 때도 있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그랬다.
유명한 설화로 가난한 집안의 한 효자 아들이 어머니와 겸상하는 아들때문에 어머니가 매번 굶자, 아들을 땅에 묻어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나 그 자리에서 돌종이 나와 아들을 구하고 어머니를 잘 봉양하게 된 설화가 있다.
하지만 양반의 법도를 깐깐히 따지는 집에서는 할아버지-손자의 겸상을 몰상식한 짓이라고 금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만큼은 절대로 겸상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풍습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시시콜콜 잔소리와 꾸중이 이어졌고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훈계를 들으며 밥을 먹자니 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식사 때만은 마주앉아 밥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쉽게 말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
그리고 이는 ‘불문율’같은 철칙하나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중종 때 황해도에서 아들이 밥 먹다가 아버지를 밥그릇으로 때려죽인 일이 발생한다.
당시 조선시대에서 가장 질이 나쁜 범죄가 둘 있었으니
하나는 반역을 꾀하는 대역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륜을 어긴 패륜 범죄인 강상죄이다.
강상죄는 한마디로 삼강오륜을 저버린 반인륜적 범죄로, 자식이 부모를 죽이거나, 부인이 남편을 죽이거나, 종이 상전을 죽이는 경우가 강상죄다.
일단 이 죄를 지으면 범인은 무조건 사형에 그의 처자는 관노로 끌려갔으며, 범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의 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팠다고 한다.
심지어 강상죄가 일어난 곳의 수령은 백성들을 교화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행정상으로 강등됐다.
다시 황해도에서 벌어진 일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밥그릇으로 때려죽인 아들은 압송되어 곧 목이 잘릴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범인을 압송했던 관찰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상침작해서 형을 낮춘다.
어째서일까? 양반가문의 불문율적인 철칙 중 하나인 ‘아버지와 아들은 절대 같은 상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는 중종 때 벌어졌던 ‘이동(아들의 이름)의 아버지 살인사건’이며, 핵심은 조선시대 최고의 범죄인 강상죄를 적용함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겸상은 정상참작의 대상이 될 정도로 ‘중대한 행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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