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6.25 영웅들, ‘불암산 유격대’ 13인

  						  
 								 

6.25전쟁 당시 제대로된 교육도 못받고 전쟁에 투입된 육사생도 13명의 이야기다.

6월 25일 전쟁이 터지고 육군사관학교 10기와 11기가 임관도 안하고 소총수 직책으로 전쟁에 나간다.

10기는 50년 7월 임관
11기는 50년 6월 1일 입교

제대로 된 교육도 못받고 많은 인원이 포천 방어전에서 죽어 전선이 밀리며 낙오된 생도들이 생긴다.

10기 10명, 11기 3명, 7사단 장병7명(부사관 2,병사5)만이 남게 된다.

그들은 “호랑이”라는 이름의 유격대를 만들어 서울 남양주시에 있는 불암산이란 곳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불암산 주변 동굴들을 이용해 유격 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당시 불암사 주지스님의 지원도 받았다.

7월 11일

그들은 북한군 100여명 정도가 있는 퇴계원보급소를 공격하기로 한다.

수류탄 화염병을 던지고 기관총을 쏘며 공격해 나갔고

그날 보급소를 완전히 태워버리고 퇴각한다.

여기서 유격대원 3명이 전사하고 만다.

7월 30일

민간인으로 변장한 6명의 유격대원들이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이곳이 북한군 수송부대가 있던 곳이었다.)

창동초등학교에 있던 적 수송부대를 기습해 엄청난 전과를 올리지만 2명이 추가로 전사하게 된다.

8월 15일

육군사관학교가 북한군의 임시 훈련장으로 쓰이고 있다는걸 알고 기습을 하게됬는데 여기서 강제로 징집된 청년들을 구해내는 업적을 이루지만 6명이 이 전투에서 전사를 하게 된다.

남은 유격대원들은 수락산으로 이동해서 은거을 했고

(위부터 수락산 밑에 작은 산이 불암산)

그들은 은거하던 중 희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천상륙작전이 실행되고 유엔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중”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계속 은거를 하면 유엔군과 합류하고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북한군이 퇴각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잡아 화물과 함께 북으로 후송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들은 몸을 숨겨 살아나가는 방법 대신 목숨걸고 마을 주민들을 구하는 일명 ‘자살 작전’에 나가기로 한다.

9월 21일

내곡리에 있던 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전투를 시작한다.

치열한 접전이 오고가고 결국 마을주민 100여명을 구출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마을주민에게 구출된 중상을 당한 강원기생도를 제외하곤 전원 전사를 하고만다.

▲은거지 표지판과 강원기 생도(총상으로 인해 1951년 사망)

당시는 9월 21일 서울 수복 1주일 전 이었다.

계급도 군번도 없이 싸운 육사 생도들과 용감히 싸운 7사단용사들.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이들에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