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윤일병 사건’
이 사건은 윤 일병의 선임이었던 김 상병의 용기있는 내부고발로 음식물로 인해 ‘기도폐쇄’로 벌어진 ‘사고’로 끝날뻔 했던 게, 선임병들의 집단 폭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사람들은 그를 ‘의인’ ‘영웅’으로 불렀지만 김 상병의 고발 이후 일제히 보직이 해임되고, 직무유기 등으로 형사 입건된 간부들은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김 상병의 ‘용기’를 칭찬하면서도 군대라는 특수한 곳에서 ‘내부고발’을 했다는 것에 걱정스런 시선을 보낸다.
아니다 다를까, 김 상병은 ‘내부 고발’로 인해 부대 간부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너가 그 유명한 재량이냐?”
“전출 가고 싶지 안냐? 갈래? 말래”
“저 새끼 때문에 내가 장기 복무가 안 돼”
고발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커지자 부대 간부들은 김 상병을 볼 때마다 한 마디씩 싫은 소리를 툭툭 던지기 시작더니..
서서히 욕설까지 내뱉으며 김 상병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준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김 상병이 맡은 부대 업무와 관련해서도 쉽게 협조를 잘 해주던 간부들이 사건 이후에는 훼방을 놓거나 불필요한 일들을 더 벌여 놓으며 괴롭힌다.
이후 군 인권센터가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군 수사기록을 입수하고 총 정리하여 당시 가혹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세상에 폭로한다.
군 검찰은 가해병사들을 ‘상해치사죄’로 기소했으나,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여론이 들끓자 ‘살인죄’를 적용하기도 한다.
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사과를 하고 28 사단장은 보직해임을 당했으며, 육군참모총장까지 사임한다.
군 인권센터의 구체적인 폭로로 아직도 썩어있던 ‘윤 일병 사건’에 다시 변화가 일어났는데, 어찌 된 일인지 김 상병은 군 인권센터의 폭로 다음 날 강제로 전출된다.
수많은 방송사에서 김 상병을 만나기 위해 28사단을 찾아 면회를 요청했으나, 해당 부대에서는 ‘해당 사건의 고발자라는 점’을 숨기기 위해 전출시켰다고 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김 상병은 ‘후임병 폭행’이라는 공식적인 명목으로 전출이 됐는으며, 전출 간 부대에서 ‘대대장 무전병’이란 보직까지 받는다.
여기서 ‘전출이 됐고 + 대대전 무전병이다’라는 일은 그가 ‘관심사병’이라는 알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 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부 고발자 포상과 보호 조치를 취한다고 했지만 김 상병에게 전출 외다른 조치는 없었다.
게다가 김 상병이 ‘내부 고발자’이고 이 때문에 전출됐다는 사실은 이미 부대에 소문이 퍼져 있었다.
덕분에 김 상병의 말년은 엉망진창이었다. 김 상병은 전출 부대의 후임병들에게 ‘아저씨’라고도 불리며, 선임병은 커녕 동료 부대원 대우조차 받지 못했다.
전출 부대의 간부들도 “안 해도 될 짓을 왜 해서 고생이냐”, “아프다고 해, 의병 전역하게”라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김 상병은 의지할 전우 하나없이 ‘왕따’로 말년을 보내며 3일에 한번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고, 우울증을 앓았다.
김 상병은 자살 충동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윤 일병’얼굴이 떠올랐고 “내가 이렇게 죽으면 나중에 윤 일병 얼굴을 어떻게 보나, 쪽 팔린다. 이 악물고 버티자”라며 독하게 마음먹고 버텼다고 한다.
윤 일병을 떠올리며 전역까지 끝까지 버틴다.
전역 이후 한 언론의 인터뷰에서 “많이 배워서 힘없는 사람에게 베풀고 싶다”며 변호사를 목표로 꿈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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