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실험 7가지

2017년 September 18일   admin_pok 에디터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실험 7가지.


7. 제임스 마리온 심스의 부인과(婦人科) 실험 – 미국

심스의 의학개발 및 직장검진 때의 자세, 심스체위 등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 마리온 심스를 부인과 의학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실험을 위해 당시의 노예를 주체로 하였고 그 실험은 오늘날이 되서야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심스는 선진적인 치료법의 개발과 연구를 위해 3명의 *방광질루(膀胱膣瘻) 앓은 여성 노예에게 마취없이 수술을 5년에 걸쳐 행했다. 여성 중 한명은 30번이나 이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방괄질루 : 방광과질이 누공을 형성한 상태를 말한다. 산부인과 수술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방광외상, 방광수술후 등 에서도 나타난다. 증상으로서는 질에서 요가 새어나오는것이 중요하다. 방광경, 방광조영에 의해 진단하는데 방광내 헤인지고칼민을 주입해서 질 탐폰이 청색으로 물들면 누공(瘻孔)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누공절제술이 주로 행해지는데 곤란한 경우에는 질 폐쇄술을 행한다.)


6. 스테이트 빌딩 감옥에서의 인체 실험 – 미국

이 연구는 1940년대 미국 육군과 시카고 대학 내과학에서 공동으로 일리노이주 스테이트 빌딩 형무소의 죄수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이 실험은 독일 뉘른베르크 의학 임상 시험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제2차세계대전 기간중 미국 육군은 말라리아 및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육군은 인체실험에 의한 신약 테스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따라 감옥에서 죄수 441명을 대상으로 말라리아의 감염 실험을 자행했다. 실행 참가자들은 자원 봉사자들로 이 중 한 명이 사망했지만 심장 마비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연구는 이후 29년간 계속되었다.


5. 731부대만행 – 일본

731부대는 구 일본군의 극비 부대에서 생물 무기와 화학 무기 연구를 행했고 중일 전쟁과 제2차 대전 중에 인체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 부대는 공식명은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 였다고 한다. 헌병대에서 조직되어 제2차대전 종료까지 이시이 시로 육군 군의관 중장의 지휘 아래 수많은 잔혹한 인체실험이 이루어 졌다.

실험을 위해 포로들은 예방주사로 불려진 주사를 맞고 특정 병에 감염됐다. 표면적인 연구 목적은 성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매독과 임질이 대상이 되었다. 다른 포로들은 벼룩에 의한 감염증 연구를 위해 고의로 흡혈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연구는 보다 효과적인 생물 무기 개발이 목적이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4. 록펠러 의학 연구소의 감염 실험 – 미국

1911년 이 연구 기관에서 노구치 히데요는 진행성 마비 질환인 매독 병원체를 발견했다. 현재 일본의 1000엔권 지폐의 초상이 된 그는 146명의 환자에게 이 질병을 감염시켰다. 환자는 아이였다고 한다. 2년뒤인 1913년 환자의 뇌에 진행성 마비가 확인되었을 때 그 병원체 발견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증명을 위해 그런 질병을 감염시킨것은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4. 아우슈비츠 의학 실험 – 독일

1941-1944년 의사들은 신약의 내성과 유효성을 알아보기 위해 고의로 전염병을 감염시켰다. 또한 기아의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카를 크라우베르크 의학 교수는 불임 실험을 단지 “조사”를 위해 행했다. 그는 여자의 생식기에 심한 염증을 일으키는 화학 용액을 주입하는 등 비외과적인 방법을 실시했다. 주입 후 잠시 후에 몸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 난관이 닫혀 버린다. 몇몇 여자는 이 실험 때문에 죽었다. 다른 여자들도 해부실험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호르스트 슈먼이라는 의사는 다인종의 생물학적 근절을 목적으로 불임화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의 난소와 고환을 X선을 표백함으로써 치명적인 화상을 입히거나 했다.

1941-1944년 의사들은 신약의 내성과 유효성을 알아보기 위해 고의로 전염병을 감염시켰다. 또한 기아의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2. 성병실험 – 미국, 과테말라

무려 2년에 걸쳐친 과테말라 위생국과 미국의 이 공동 실험은 미국의 공영 위생국 의사인 존 찰스 커틀러를 중심으로 행해졌고 피험자는 대부분 병사, 매춘부, 죄수, 그리고 정신 장애자 등 약 1500명을 아무런 동의 없이 병에 감염시켰다. 불행하게도 이중 83명이 이 연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이 드러난 것은 반세기 이상을 거친 2005년에 웰즈리 대학의 수잔 레바비 교수가 미국 정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에서의 실험의 목적은 건강한 사람에게의 병을 감염킨 후 어떤 방식으로 페니실린을 사용해야 성병의 예방, 치료, 호전이 되는가 였다고 한다. 이 실험에 관한 소문과 가십 기사가 나오게 된 것은 1948년. 그 때는 이미 실험은 종료되었지만 1950년대 초까지 환자의 관찰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2010년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인체실험에 대해 이 사건을 “인도에 대한 범죄”라는 공식 사과를 발표해다.


1. 터스키기(Tuskegee) 매독 실험 – 미국

이 실험은 틀림없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의학 실험이다. 가난한 흑인 남자들을 대상으로 매독이 어떻게 진행하는가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대상이 된 남자들은 정부에 의한 무료 의료 서비스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932년 미국 정부는 알라바마 주 메이콘군의 가난한 소작인 600명을 명단에 기재했다. 600명 중 이미 감염되어 있었던 399명과 나머지의 건강한 201명의 대조 실험이 진행됐다. 참가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 무료 건강 관리, 먹을 것, 그리고 보험 가입의 권리를 주었지만 병에 걸린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참가자에 알려진 것은 나쁜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었고 진단 결과도 대부분 빈혈과 피로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 실험은 40년이나 이어졌다. 1947년까지 의사들은 치료를 하는 것도 사실을 전하는 것도 하지 않았고 환자에게는 매독이나 처치에 관한 적절한 정보는 아예 차단시켰다. 실험은 1972년에 정부의 우발적 리크(비밀누설)에 의해 막을 내렸다. 이 실험의 생존자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고 실험 도중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출처 – 이종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