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엮인 2기의 폭격기를 착륙시킨 조종사의 최후

2017년 October 24일   admin_pok 에디터

1940년 9월 29일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주 포레스트 힐 기지의 제2군사항공훈련학교에서 폭격 훈련기인 아브로 앤슨 2기가 떠오른다.


▲아브로 앤슨 폭격기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모자란 조종인력의 충원을 위해 제국 항공훈련 계획 Empire Air Training Scheme을 추진하여 영연방 국가들에 대거 군용 조종사 양성 시설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주 와가와가의 포레스트 힐 공군기지에 위치해 있었다.

이날 아침에 포레스트 힐 기지에서 훈련 출격한 아브로 앤슨 2기 중 기체번호 N4876에는 레너드 풀러 (22세) 항공일병이, L9162에는 잭 휴슨 (19세) 항공일병이 조종간을 잡았다.

아브로 앤슨 편대비행

이륙 후 10여 분이 지난 후 약 300 미터의 고도에서 풀러의 앤슨기가 선회 기동을 시도하는 중 구름에 가려 잠깐 시야를 잃은 사이 바로 밑의 휴슨의 기체에 올라타고 만다.

풀러 기체의 양쪽 엔진 프로펠러가 휴슨 기체에 부딪히며 정지하고 두 기체는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게 된다.

밑의 휴슨 기체의 조종사 휴슨과 항법사 휴 프레이저는 낙하산으로 탈출하고 풀러의 항법사인 이안 싱클레어도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역시 탈출하려던 풀러는 휴슨의 기체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기체 꼬리날개로 아직 조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근의 목초지에 비상착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충돌 후 약 8킬로미터를 더 비행하여 브로클레스비 인근 목초지에 팬케이크 랜딩이라 불리는 동체 착륙에 성공한다.

이후 호주 공군과 영국 공군의 합동 사고 조사단에 의하면 완벽한 착륙 장소의 선정과 빛나는 착륙 노력의 성공이었다.

그 후 이야기

당시가 4만 파운드짜리 앤슨기는 위의 풀러 기체는 수리 후 다시 비행에 투입되었고 아래의 휴슨 기체는 수리 후 훈련 교재로 지상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조종사 휴슨은 사고 당시 입은 등 부상에서 회복한 후 계속 호주 공군에 복무하여 2차대전이 끝난 1946년 공군 중위로 퇴역한다.

풀러의 항법사 싱클레어 역시 공군에서 복무한 후 1945년 공군 중위로 퇴역한다.

휴슨의 항법사 프레이저는 영국 공군으로 배치되어 북아일랜드에서 복무 중 1942년 타고있던 록히드 허슨기가 추락하여 사망한다.


▲사고 직후 특진한 풀러

이 사건의 주인공 풀러는 사고 후 비행 하사로 특진하였으나 사건 내용을 무단으로 언론에 알리고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14일간 영창과 1주일 감봉 처분을 받았다.

1940년 10월 항공훈련학교를 수료한 풀러는 뛰어난 두뇌와 용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정확한 판단력이라는 추천서와 함께 영국 공군에 배치된다.

왕립 공군 37 비행대 소속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작전에 참가하고 1942년에는 이탈리아 팔레르모 작전의 성과로 훈장을 수여받는다.

중위로 진급한 후 호주 빅토리아주 세일에 위치한 제1작전훈련단에 부임, 교관으로 복무하던 1944년 3월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버스와 충돌하여 사망하였다.


▲사건 기념비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 브로클레스비는 이 사건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었고 사건 기념비는 현재까지도 마을의 유일한 명소이다.